지난 1일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는 국내정치에 특화된 집단이다. 외침에 맞서고 영토를 지켜내야 하는 본연의 역할을 벗어나 이들이 권력에 집착한 시간은 1962년부터 2015년까지 자그마치 53년이다. 이 기간 군정은 민주화를 요구하다 총탄에 목숨을 잃은 3,000명 이상의 피 위에서 이어졌다. 무력을 앞세우고 극우파를 이용한 사회 분열책은 수차례 실험을 통해 완성된 군정의 교본이 됐다.
2021년의 미얀마 시민들은 실패한 1988년 '88항쟁'과 2007년 '샤프란 혁명' 경험에서 진화한 최신 버전이다. 군부의 공식을 잘 아는 이들은 역으로 격정이 아닌 연대를 택했다. 과거처럼 시위대 영웅을 중심으로 분노를 결집해 맞선다면 '사회안정'을 명분으로 군부가 무력진압에 나설 것을 뼈저리게 알고 있다. 실제로 시민들은 지난 9일 경찰의 실탄 사격으로 뇌사에 빠진 킨(20)씨 사건에도 크게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킨을 살려내라"며 돌맹이를 던지기 보다 공무원 파업을 늘려가며 전선을 확대하는 데 주력했다.
시민들은 군부에 전략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군이 '분란의 씨앗'으로 뿌린 2만3,000여명의 죄수가 12일 일제히 석방되자 시민들은 동네마다 순찰대를 만들어 치안을 강화했다. 이 모든 정황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파돼 국제 연대의 초석이 되고 있다. 아직은 군부의 과거 초식(招式)들이 현재를 사는 시민들의 차분함을 완전히 뚫어내지 못한 것이다.
군부는 15일 재차 인터넷망을 차단한 데 이어 장갑차 등 군병력을 이동시키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다급한 이들이 평화 시위마저 유혈진압할지 분명치 않으나 순순히 물러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미얀마 민주화의 봄은 상상속에만 어른거릴 뿐, 손에 잡히지 않는 얘기인 셈이다.
"내가 살아갈 오늘과 미래를 다시 군부에 내줄 수 없다"는 양곤 청년들의 외침이 더 큰 울림이 되기 위해, "미얀마를 구해달라"는 어린이의 팻말이 꺽이지 않기 위해, 지금은 군부독재의 아픔을 겪은 한국이 더 많은 연대의 마음을 보내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