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운동의 대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별세하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고인에 대한 추모 물결이 일었다. 누리꾼들은 고인을 추억할 수 있는 사진을 올리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누리꾼들은 백 소장을 청년들의 리더로 기억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1994년 백 소장과 찍은 사진을 올렸다.
당시 박 의원의 모교인 성균관대를 찾은 백 소장은 박 의원과 함께 성대 학생들을 만났다. 사진 속에서 당시 대학생이던 박 의원은 투쟁 구호가 적힌 노란색 머리띠를 두른 채 백 소장과 교정을 걸으며 대화하고 있다.
박 의원은 "선생님은 대학교 교정을 자주 찾으셨다. 청년들 만나는 일이 가장 기쁘다고 하셨다"며 "1994년 봄 성대 명륜동 교정에서 집회가 있었고, 그날 행사에 연설을 해주려고 오셨던 사진"이라며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그는 이어 "선생님께선 젊은 청년들의 가슴을 떨리게 하는 힘이 있으셨다"며 "독재와 불의에 맞서던 그분의 용기와 시대를 가르는 사자후로 청년들을 움직이게 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분의 격려 덕분에 두려움을 떨치고 한 걸음을 내디뎠던 많은 청년 중에 저도 있었다"며 "오늘 아침 그분의 선거운동으로 뛰었던 1992년 대선의 겨울과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각성을 호소하던 명연설들의 장면이 떠올랐다"고 회상했다.
과거 대선에서 진보진영 인사들을 감동시킨 명연설가, 정치인으로 기억하는 누리꾼도 많았다. 최상구 지구촌동포연대 사무국장은 페이스북에 백 소장이 1992년 14대 대선에 뛰었던 당시 백 후보의 선거캠프 단체 티셔츠 사진을 올렸다.
당시 단체 티셔츠에는 팔을 힘차게 뻗는 백 소장의 모습이 박혔다. 이 티셔츠는 14대 대선 때 백 후보 캠프에서 사용한 단체 티셔츠로, '민중정치', '민중후보와 함께 변혁의 새시대로'란 문구가 적혀 있다.
백 소장은 13·14대 대선에 연이어 출마했다. 재야운동권 독자후보로 추대돼 무소속으로 입후보했지만, 13대 대선에선 중도 사퇴했고 14대 대선에선 낙선했다.
백 소장을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한 작가로, 또는 문화 운동에 앞장선 문화예술인으로 떠올리는 누리꾼도 있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백 소장이 생전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나니'라고 쓴 서예 작품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 교수는 이와 함께 "지난 20년 넘게 문화연대의 운동에도 늘 함께하셨던 선생님, 예술의 힘을 누구보다 힘차게 투쟁의 현장에서 부르짖으셨던 선생님"이라며 "이제 편안한 곳에서 영면하시길 기원한다"고 적었다.
김동석 미주 한인유권자연대 대표는 1979년 6월에 발표된 백 소장의 시집인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의 책 표지 사진을 올렸다.
김 대표는 "백 선생님의 따님 백원담(성공회대 중어중국어과 교수)씨는 우리와 동갑내기인데, (이 시집은) 그 따님에게 편지 형식으로 쓴 책"이라며 "우리에게 주신 살아있는 말씀이다. 나는 이 책의 영향으로 세상에 대해 진지해졌다"고 말했다.
고인에 대한 추모 열기로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떠올린 이들도 많다. 백 소장이 임을 위한 행진곡의 원작자이기 때문이다. 5·18 민주화운동 중 희생된 윤상원씨와 박기순씨의 영혼 결혼식을 위해 1981년에 만들어진 노래로, 가사는 백 소장의 장편 시 '묏비나리-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에서 가져다 썼다.
백 소장은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1960년대 한일협정 반대 투쟁을 계기로 민주화 운동에 뛰어든 백 소장은 1967년 통일문제연구소의 모태인 백범사상연구소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