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불에 폭행도 다반사… '인도 요리사' 수난시대

입력
2021.02.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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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요리 붐으로 대거 입국했지만
14시간 근무에 휴일은 한달에 하루
소송해도 확정판결까지 수년 걸려
경제적 어려움에 울면서 한국 떠나

"오른손이 움직이질 않아요. 요리사로서 제 인생은 끝났어요. 제발 한 번만 도와주세요."

지난 10일 오후 서울 구로구 노무사 사무실. 다리를 절며 간신히 출입문을 밀고 들어온 40대 외국인 남성이 갑자기 기자에게 무릎을 꿇고 눈물을 쏟았다.

이 남성의 이름은 조쉬 수실 쿠마르(48). 20세 때부터 인도 뭄바이에서 요리사로 일하던 쿠마르는 2011년 2월 특정활동(E-7) 비자로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당시 국내에서 커리와 탄두리치킨 등 인도 요리 붐이 불자, 그는 "한국에 정통 인도 요리 맛을 알리겠다"는 생각에 한국행을 택했다.

쿠마르의 지옥 같은 삶은 2016년 12월 충북 청주의 한 커리전문점에 자리를 잡으며 시작됐다. 보통 인도 전문요리점은 최소 2명의 요리사를 두지만 이 곳엔 쿠마르 한 명밖에 없었다. 매일 14시간 근무에 한 달 하루밖에 되지 않는 휴일, 점심시간도 없는 쳇바퀴 같은 하루가 쿠마르의 심신을 갉아먹었다. 계약서에 명시된 그의 월급은 한달 150만원이었는데, 그마저도 사장은 매번 제때 지급하지 않았다. 그렇게 밀린 임금만 1,000만원이 넘었다.

참다 못한 쿠마르는 2019년 8월 음식점에서 도망친 뒤 변호사를 구해 임금체불소송을 제기했다. 판결을 기다리는 1년 동안 쿠마르는 인도에서 가족들이 보내준 돈과 한국에 있는 인도 친구의 도움으로 고시원을 전전하며 끼니를 해결했다.

기다리던 판결은 지난해 7월 나왔다. 청주지법은 음식점 사장에게 "미지급 임금 및 퇴직금 1,2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지만, 사장이 항소하면서 임금 받을 길이 막막해졌다. 결국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쿠마르는 지난 6일 급성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몸 오른쪽이 마비됐지만, 돈이 없어 병원에서 MRI 등 최소한의 검사만 받았다. 약값도 없어 그는 설 연휴 내내 고시원에서 끙끙 앓았다.

더는 요리할 수 없는 오른손을 보며 쿠마르는 한국에서 요리사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접었다. 그는 16일 오후 11시50분 인천발 두바이행 비행기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쿠마르는 비행기 탑승 전 본보와의 통화에서 "아마 한국에 다시는 오지 못할 것"이라며 "아픈 아내와 4남매 학비를 벌어야 하는데, 인도에 돌아가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흐느꼈다. 그는 "안 좋은 기억도 많았만, 끝까지 도와준 한국 사람들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인도 국적 요리사만 수백명인데... 폭행한 사업주는 벌금 200만원

부푼 꿈을 안고 국내에 온 인도 요리사들이 사업주 폭행과 노동착취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와 사업주가 필요에 의해 전문인력으로 데리고 왔으면서도, 정작 제대로 관리하고 대우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22일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에서 체류 중인 인도 국적의 E-7 비자 이주노동자는 총 897명이다. 이중 70% 이상이 요리사로 일할 만큼 국내의 인도 요리전문점 대다수는 현지인을 고용하고 있다. 인도 요리는 한국인이 레시피를 배워 만들어도 특유의 맛을 내기 어려운 탓에 2010년대 초반부터 급증한 요리사 수요를 현지 셰프를 수급하는 방식으로 채워왔다. 인도 음식점에서 현지 요리사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처우는 비싼 요리값에 한참 못 미치는 열악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인도 음식점은 난과 커리 등 종류별로 전문 셰프를 2명 이상 두는 게 일반적이나, 국내 음식점들은 인건비 문제로 한 명만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 최저임금을 주며 수당도 없이 야근을 시키는 경우가 다반사고, 임금체불과 폭행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나렌다 싱 사지완(42)씨도 쿠마르처럼 사업주로부터 임금체불을 비롯해 폭행까지 당한 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서울의 친구 집에 2년 가까이 얹혀 살고 있다.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2단독 장윤미 부장판사는 지난달 13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지완씨의 전 고용주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고용주는 2019년 2월 사지완의 머리를 항아리로 내려치고, 2018년 4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임금과 수당 834만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용주가 항소하면서 밀린 임금을 받아 가족들에게 보내려던 사지완씨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소액체당금·무료법률지원 있지만... 인도 요리사에겐

근로복지공단이 소액체당금 제도를 통해 임금 보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이주노동자들이 혜택을 받긴 쉽지 않다. 소액체당금은 임금 및 퇴직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가 법원 확정판결 및 지급명령을 받은 경우 정부가 일정 범위의 체불임금(최대 1,000만원)을 먼저 근로자에 지급하고, 사업주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제도다. 하지만 사업주들이 대법 확정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 점을 노려 버티는 경우가 많아, 그 사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을 떠나기도 한다.

사업주를 경제적으로 압박하기 위해 임금을 늦게 줄수록 연 20% 이자를 물리는 '지연이자 제도'도 있지만 이 또한 활용도가 낮다. 언제까지 지급하라는 규정이 없는 데다, 안 줘도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변호사 선임비용 또한 인도 요리사들에겐 큰 부담이다. 최소 200만~300만원에 달하는 선임비는 돌려 받을 임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해, 승소해도 손에 쥐는 금액은 많지 않다. 법률구조공단의 무료법률지원제도가 있지만, 외국인에게는 접근성이 떨어지는 데다 지원인력 부족과 의사소통 문제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최미숙 노무사는 "임금체불을 비롯한 인도 국적 요리사에 대한 노동착취가 최근 10년간 급증했다"며 "사업주 인식 개선이 가장 중요하지만, 노동청·검찰·법원도 사업주들의 불법행위에 대해선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