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자판기에, 배달도 OK~"… 국세청이 술 권하는 이유

입력
2021.02.12 12:00

국세청은 올해 초 ‘술 자동판매기’ 설치를 허용하겠다는 파격적인 발표를 했습니다. 술은 미성년자에게 판매할 수 없어 그동안 자판기 사용이 금지돼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성인인증 기능을 갖춘 자판기가 나온 만큼 굳이 허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실제 이같은 국세청의 '술 사랑' 행보는 최근 수년째 계속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치킨이나 족발 등 배달 음식을 시키면 술을 함께 시킬 수 있도록 하는 '술 배달'을 허용했습니다. 또 온라인에서 마시고 싶은 술을 주문한 뒤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스마트 오더’도 열어줬죠. 오랫동안 통제의 대상으로만 봐 왔던 술을 정부도 이제는 발전시켜야 할 산업으로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주세, 알고 보니 총 세수의 1%

소비자들이 술 하면 국세청을 바로 떠올리기는 쉽지 않지만, 사실 국세청과 술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오랜 기간 술 산업과 동행해 왔고, 연간 세금수입에서 술이 차지하는 비중도 무시 못할 정도입니다.

국세청이 술을 관리하기 시작한 것은 대한제국 시대인 1909년 2월 우리나라 최초의 간접세인 주세를 도입하면서부터 입니다. 집에서 빚는 술도 모두 면허를 받도록 규정해 일일이 통제를 했죠.

지금도 술을 제조하거나 판매하기 위해서는 국세청 면허가 필요합니다. 소주나 위스키 등 증류주에는 술 출고 가격의 최고 72%까지 세금을 매기다 보니 면허 없이 자유롭게 사고 팔게 해 주면 탈세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도 세금을 관장하는 기관이 술 면허와 관련된 업무도 같이 담당합니다.

연간 세수에서 주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2019년 1년간 양조장에서 출고된 술만 해도 8조9,000억원어치, 이에 따르는 세금도 2조6,000억원에 달합니다. 수입 주류에 붙는 세금까지 다 더하면 3조2,000억원으로 연간 전체 세수의 1%가 넘는 수준입니다. 술 산업이 커질수록 세금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죠.


'전통주'는 인터넷 주문도 가능

국세청이 특히 관심을 갖는 분야는 전통주를 비롯한 ‘우리 술’ 입니다. 한때 우리나라 술 시장에서 80% 이상 점유율을 차지하기도 했던 막걸리가 최근에는 10% 수준까지 줄어들 정도로 우리 술의 경쟁력이 많이 약해졌기 때문이죠.

특히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만들거나, 지역 농산물로 만드는 전통주는 정부가 세제 혜택도 주고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플랫폼에서도 살 수 있도록 허용하지만 아직도 명절 선물 정도로만 인식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조업체도 영세하다 보니 홍보는 물론 전국으로 배송하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전통주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와인이나 독일의 맥주처럼 술 자체가 관광 상품이 될 수도 있죠. 이에 국세청도 전국 각지에 있는 세무서를 통해 유서 깊은 양조장을 발굴하고, 양조장에 대한 ‘스토리텔링’ 작업도 곁들이려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우리 술 종류와 유래 등을 담은 백서 ‘우리 술 책에 담다’를 발간하고, 세종시에 있는 조세박물관에서는 술 관련 전시회도 진행할 정도입니다.

세금 걷는 줄만 알았던 국세청, 알고보면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명절에는 우리 동네에서 만든 우리술 한번 마셔보는 게 어떨까요.

세종 = 박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