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청와대의 정치인 사찰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국가정보원에서 18대 국회의원 299명 전원의 신상 정보가 담긴 동향 파악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더불어민주당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강공을 예고했다. 설 직후 국정원 보고를 위한 국회 정보위원회도 소집돼 논란은 계속 커질 전망이다.
정보위 핵심 관계자는 9일 한국일보에 “2009년 12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지시로 국정원 내 특명팀이 꾸려져 최소 4년간 운영됐다”며 “국회의원들에 대한 사찰 문건도 있었고 내용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에 대한 판결문과 피해 당사자들의 정보공개 청구로 제기된 여야 정치인 사찰 의혹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주로 의정 활동과 관련 없는 사적인 내용이 문건에 담겨있다”면서 “박근혜 정부 때까지 사찰 활동이 계속됐는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또 "전체 사찰 피해자가 최소 900명은 된다"고 덧붙였다.
국정원도 문건 존재 자체를 부인하지 않았다. 이날 입장문에서 국정원은 “국회의원 동향 파악 문건의 전체 목록 및 내용을 확인한 바 없다. 당사자의 청구가 없는 한 국정원은 확인할 권한이 없다”며 문건의 존재 가능성을 우회적으로 시사했다.
문건을 공개할 여지도 열어뒀다. 국정원은 “현재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법률과 판례에 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관련 정보를 성실히 제공하고 있다”며 “국정원법에 따라 국회 정보위 재적위원 3분의 2 의결이 있을 경우 비공개로 보고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이달 16일 정보위를 통해 국정원으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는다. 정보위원 12명 가운데 8명이 민주당 소속이라 단독으로 의결 정족수를 채울 수 있다. 신영대 민주당 대변인은 “사찰문건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도 주장했지만, 문건 열람이나 공개를 추진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되는 탓이다.
'공개하는 자료에 개인정보가 들어있더라도 기관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특별법이 필요한데, 국회 입법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피해 당사자가 직접 국정원에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이 역시 주제와 시기를 특정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정보위 여당 관계자는 “사찰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느 정도 규모로 이뤄졌는지 등을 보고받는 게 우선”이라며 “그런 다음 일단 결의문을 채택해 국정원에 재발 방지와 피해자 개개인에 대한 통보를 요구하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