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 질서 복원에 대한 기대감이 워싱턴 싱크탱크와 학계를 중심으로 솔솔 피어나고 있다. 자칫 희망 사항에 그칠 가능성이 크지만 이들 자유무역 옹호론자들의 논리와 주장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우선 고용 감소의 원인부터 살펴보자.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은 미국을 포함, 주요 선진국에서 관찰되는 일종의 추세이다. 제조업 일자리는 경제 발전 초기에 늘어나다가 경제가 일정 수준을 지나면 줄어드는 이른바 ‘역U자형’ 경로가 일반적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는 기술의 변화와 경기 사이클 그리고 이민이나 무역, 투자 패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제조업 축소는 서비스업 발전의 거울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무역 흑자를 내는 나라들에서 제조업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최근의 연구 결과도 흥미롭다. 따라서 보호무역은 일자리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안보를 위해서라면 정부가 발 벗고 나서 국내 기업들을 지원하고 외국산 수입을 가로막아야 한다는 발상 즉 ‘안보 내셔널리즘’은 ‘중국제조 2025’ 만큼이나 위험하다고 이들은 말한다. 미국의 무역 제한 조치로 국제가격이 상승하자 글로벌 경쟁사들의 이윤이 오히려 늘어나 미국 경제를 더욱 옥죈 역사적 경험들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유무역이 중국과 인도, 베트남에서 이룬 눈부신 빈곤 퇴치 성과에도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수억 명의 인류를 절대 빈곤에서 해방시킨 주역이 자유무역이었음을 강조한다.
미국 제조업이 망해간다는 ‘미국 제조업 위기론’도 이들에게는 정치권의 필요에 의해 ‘제조된 위기론’에 불과하다. 특히 국가 안보와 관련된 금속, 수송, 통신, 컴퓨터, 전기·전자, 바이오, 의료제품 등에서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생산 역량과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문제는 이들 자유무역론자들이 ‘정책의 효과’만 들여다볼 뿐 ‘정치의 작동기제’를 놓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경제적 편익만 계산할 뿐, ‘역사’나 ‘미래’ 혹은 ‘가치’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절대 빈곤’을 이야기 할 뿐, ‘상대 빈곤’의 정치적 귀결은 무시하고 있다. 지난 30년의 역사가 앞으로도 지속되리라는 믿음 속에서....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구소련과 동구권의 몰락 이후 지난 30년, 서방의 정치권이 자유시장경제의 승리감에 도취한 사이, 상대적 박탈감에 멍든 수많은 유권자들은 메시아의 등장을 꿈꾸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의 응축된 불만은 정치적 열망으로 타올라 기존 자유무역의 경로를 뒤틀고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나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도 바로 이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튀어 나온 ‘중국 변수’는 세계 시장의 근본적인 구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에 기댄 거대 중국기업들이 게임의 규칙을 무시하고 시장을 교란시키는 일상이 바이러스처럼 확산되는 양상이다. 미국의 ‘안보 내셔널리즘’은 바로 그 대척점에 서 있다. 장기적으로 중국과의 결별을 염두에 둔, 단계적이고도 전략적인 디커플링의 수순을 워싱턴이 밟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주도의 서방 공급망 형성은 그런 점에서 중국과의 디커플링에서 오는 충격을 완화시켜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해낼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민주·공화 연합군은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다. 건너온 다리도 불살랐다. 전쟁 중인 적국과는 무역을 하지 않는다. 자유무역의 경제적 이익을 논하는 것이 공허하게 들릴 수 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