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보호소에 입소한 유실∙유기동물에 주어진 시간은 열흘이지만 실제 보호 기간은 보호소 여건에 따라 다르다. 열흘이 되면 곧바로 안락사를 하기도 하지만 운영자의 재량에 따라 기간을 연장하는 경우도 있다.
경북 영양군 지자체 보호소는 2019년 5월 이후 안락사를 하지 않고 유기견을 돌봐왔다. 개들을 마당에 묶거나 방치해서 키우는 지역 특성상 보호소에 들어오는 유기견도 믹스견이 대부분이다. 다른 지역 보호소와 비교하면 입양도 저조하지만 입소하는 수도 많지 않다고 한다. 적정 수용 개체 수는 30마리, 안락사를 하지 않다 보니 2배인 61마리까지 늘었고, 보호소 운영자는 지난해 12월 24일 1년 6개월 만에 30마리에 대한 안락사를 시행하기로 했다.
D+300: 안락사 전 마취제 맞고 잠든 공고번호 2020-00007
"오늘 안락사를 시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방문했습니다."
지난해 12월 24일 오전 9시, 비글구조네트워크(비구협) 활동가들은 전날 30여 마리를 안락사 한다는 제보를 받고 서둘러 영양군 유기동물 보호소에 도착했다. 해당 지역 담당 공무원과 보호소 내부를 둘러본 결과 이미 10마리는 안락사 전 마취를 위한 석시콜린을 투여해 잠들어 있었고, 1마리는 안락사가 시행된 뒤였다. 대상 선정, 약물 사용, 격리공간 등 모든 절차가 적법하게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에 안락사를 막을 수 없었다. 안락사 대상 30마리 가운데 2019년에 입소한 유기견만 10마리, 보호소에서 무려 1년 6개월을 산 개도 5마리나 됐다.
비구협 활동가들은 사람이 좋다고 뛰어대는 개들을 뒤로하고 나올 수 없었다. 담당 공무원에게 한 달의 시간을 달라고 부탁하면서 그동안 안락사 예정인 개의 입양처를 찾겠다고 약속했다. 활동가들은 이미 숨을 거둔 1마리를 제외한 29마리의 생명을 구하는 크리스마스이브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일단 개들의 목숨은 건졌지만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다시 안락사를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활동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입양 가족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마취제를 맞고 잠이 든 9마리 가운데 1마리인 공고번호 2020-00007. 흰색과 갈색 털이 섞인 작은 체구의 개가 양미란 비구협 구조팀장 눈에 띄었다. 보호소 운영자에 따르면 2020년 2월 18일 영양군 입암면 한 정자 밑에 어미 개가 낳아 기르던 7마리 중 1마리이다. 어미개는 바로 도망가 포획하지 못했고, 1마리는 얼마 가지 않아 숨을 거둬 보호소에 6마리가 남은 상황이었다. 보호소에 들어온 지 300일째, 안락사를 위한 마취주사까지 맞았던 믹스견은 다행히 안락사의 위기를 넘겼다.
D-30~D-7: 단 한 건의 입양문의도 들어오지 않은 날들
보호소가 연장해 준 기간은 딱 1개월. 그 사이 입양자를 찾지 못하면 그땐 보호단체도 안락사를 막을 도리가 없다. 믹스견의 경우 태어나자마자 보호소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사람을 무서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공격성이 없고 얌전한 성격이라 사람과 잘 지낼 수 있는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그럼에도 개를 입양하겠다는 사람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무서워하면서도 누군가 다가가면 철창 앞으로 나오는 개에게 활동가와 자원봉사자가 해줄 수 있는 건 간식을 넣어주는 일뿐이었다.
양 팀장은 "비쩍 마른 몸이 안타까웠다"며 "1년 가까이 좁은 공간에 갇혀 운동을 제대로 못 하고, 밥도 충분히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이어 "사람과 같이 지낸 적이 없어 사회성은 없다"면서도 "사람을 보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노력하면 성격은 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D-6: 325일만에 보호소를 나서다
비구협이 29마리를 입양 보내겠다고 약속한 날이 6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그때까지 입양이 확정된 개체는 총 9마리. 입양률이 저조해 활동가들이 애태우고 있던 차 경북 성주군 주민으로부터 믹스견을 입양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지난달 18일 비구협 활동가들은 입양을 보내기 전 장염 등 전염병은 없는지를 체크하기 위해 보호소를 찾았다. 개는 검사 결과 이상이 없었고, 전보다 활동성이 좋아 보였다. 봉사자의 품에 안긴 믹스견은 어색해하면서도 귀를 뒤로 젖힌 채 눈을 감고 쓰다듬는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믹스견은 입소 325일 만에 보호소를 벗어날 수 있었다. 보호소 입소 때부터 개를 봐온 봉사자 임모씨는 "개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게 너무 안쓰러웠다"며 "1년 가까이 봐온 개가 입양을 간다니 너무 기뻤다"며 울먹였다.
지난 8일 기준 새로운 가족을 만난 유기견은 17마리. 비록 약속한 29마리의 거처를 찾지 못했지만 보호소는 다행히 안락사를 시키지 않고 있다. 하지만 보호소 내 동물이 입양을 가지 못하고 유기견이 입소하면 또 안락사 명단에 오를 수 있기 때문에 활동가들은 여전히 남은 개들을 입양 보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양 팀장은 "입양을 간 개들이 예상보다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했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며 "열악한 보호소에 남은 개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