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국제표준’ 선점에 공을 들이고 있다. 격화하는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없었던 결정적 이유를 서방 선진국들이 만든 기술 표준에서 찾은 것이다. 돈 밭이 지천인 최첨단 기술이 타깃이다. 5세대(5G) 이동통신과 인공지능(AI) 등 눈독을 들이는 분야도 가리지 않는다.
7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정부는 독자적인 국제표준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산업화 시절 서구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국제표준이 중국의 글로벌 경제 주도권 장악에 걸림돌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퀄컴 등 ‘잘 만든’ 표준 기술 하나로 매년 수십억달러를 벌어들이는 첨단 기업들이 참고가 됐다.
돌아가는 형편도 나쁘지 않다. WSJ는 “무인자동차와 사물인터넷(IoT) 등 5G 네트워크에 연결되는 새 기술의 표준 제정 작업은 아직 진행 중에 있다”고 전했다. 화웨이 등 5G 기술을 이끄는 선두 업체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만큼, 물량 공세로 충분히 표준 선점이 가능하다는 복안이다. 실제 독일 시장조사업체 아이피리틱스 집계에 따르면 올해 1월까지 5G 분야에서 중국이 기술 표준을 제안한 비율은 무려 31.5%나 된다. 4G 표준 제정 당시(22.4%)보다 10%포인트 가량 증가했다.
공세는 이미 시작됐다. 중국은 표준 장악을 위한 첫 교두보로 관련 국제기구 진출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 등 표준기구 4곳을 중국 인사가 이끄는 중이다. 신문은 “10년 전과 비교해 국제표준화기구(ISO) 등 표준 기관에서 중국 대표가 사무국 직책을 담당하는 수가 두 배로 늘었다”고 보도했다.
‘중국표준 2035’로 명명된 차세대 기술 표준 선점 프로젝트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 제조업을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중국제조 2025’에 이은 또 하나의 야심작이다. 각급 정부 및 ISO 등 기관에서 국제표준 개발을 주도하는 기업에 연간 최고 100만위안(약 1억7,300만원)을 제공하는 ‘당근’도 마련했다. 크리스토프 빈테르할터 독일표준화연구소 최고경영자(CEO)는 “앞으로 중국 표준에 따라 가더라도 놀랄 일이 아니다”라며 중국의 기술 굴기를 경계했다.
중국은 자국이 주관하는 기술 표준을 전파하는 데도 열심이다. 중국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아우르는 육ㆍ해상 신(新) 실크로드인, 이른바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통해서다. WSJ는 “해당 국가에 막대한 보조금을 들여 철도나 전기 시스템 등 기반 시설을 중국식으로 건설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서방국가들이 우려하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 혐의가 입증된 중국의 ‘정보 탈취’ 가능성이다. 화웨이, ZTE 등 중국산 정보기술(IT) 제품들에 정보를 빼돌리는 ‘백도어’가 설치돼 있다는 의심이다. 아미리 아키라(甘利明) 전 일본 경제산업장관은 “중국 제품이 데이터를 수집하도록 만들어졌다면 중국 정부가 모든 것을 알게 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