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의 진자, 에코의 소설

입력
2021.02.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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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장 베르나르 레옹 푸코


"교회 천장에 고정된 긴 철선에 매달린 구체는 엄정한 등시성의 위엄을 보이며 앞뒤로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때, 진자가 흔들리는 주기는 철선 길이의 제곱근과 원주율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원주율이라는 것은 인간의 지력이 미치지 않는 무리수임에도 불구하고 그 고도의 합리성이 구체가 그려낼 수 있는 원주와 지름을 하나로 아우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구체가 양극간을 오가는 시간은, 구체를 매달고 있는 지점의 단원성, 평면의 차원이 지니는 이원성, 원주율이 지니는 삼원성, 제곱근이 은비하고 있는 사원성, 원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완벽한 다원성 등속의, 척도 가운데서도 가장 비시간적인 척도 사이의 은밀한 음모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었다."('푸코의 진자', 움베르토 에코,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프랑스 실험물리학자 장 베르나르 레옹 푸코(Jean Bernard Leon Foucault, 1819.9.18~1896.2.11)가 1851년 파리 팡테옹 지붕에 67m 길이의 밧줄로 28kg 황동코팅 납을 매달아 진자 실험을 감행한 까닭은 지구 자전을 실증해 보이기 위해서였다. 그는 장치 바깥에 계기판을 설치, 추가 한 면을 따라 오가는 듯 보여도 시간이 흐르는 동안 미세하게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며 오간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가령 극지의 자전축에 높다란 기둥을 세워 추를 매달아 흔들면 현장에서는 같은 면을 따라 오가는 듯 보여도 저위도에서 보면 추가 회전하며 움직인다는 걸 알게 되는 이치. 그 움직임의 가시성을 극대화하고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는 최대한의 높이에 아주 무거운 추를 달아야 했다.

그 엄정하고도 단순한 사실(현상)이 구현되는데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성질과 원리, 현실 공간의 변수들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저항의 허들 사이에서, 조금만 삐끗해도 이성은 길을 잃고 사이비 음모론의 허방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에코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1995년 복제품으로 교체돼 파리 팡테옹 돔에 매달린 푸코의 진자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취약한 인간의 이성을 경고하며 지금도 진동하고 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