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을 향한 야권과 보수단체의 사퇴 압박이 연일 거세지고 있다. 김 대법원장에 대한 비판의 지점은 사상 첫 법관 탄핵 심판 대상이 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의 표명 과정과 관련, 지난해 5월 면담 때 ‘정치권 눈치를 보며 탄핵을 거론했다는 것’과 지난 4일 당시 대화내용에 대해 거짓 해명을 했다는 것이다. 하나하나가 중대해 보이는 만큼, “대법원장 자격이 없다”는 게 그를 향한 비난의 핵심이다.
문제는 사태 수습을 위한 뾰족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법부 수장으로서 리더십에 커다란 타격을 입은 만큼, 일각에선 자진 사퇴까지 거론되고 있으나 김 대법원장의 최종 선택지가 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법원 전체가 당분간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7일 대법원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은 주말 동안 특별한 외부 일정이나 입장 표명 없이 공관에 머무른 채 ‘침묵 모드’를 이어갔다. 임 부장판사와의 녹취록이 공개된 당일, 두 차례의 사과 표명을 마지막으로 별다른 목소리를 내놓고 있지 않다. 5일 야당 의원들의 항의 방문 때에도 ‘스스로 물러나 달라’는 요구를 받았으나, “앞으로 잘하겠다”는 취지의 답변만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 대법원장 사퇴 요구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 바른사회운동연합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국민 앞에서 거짓말하는 대법원장은 헌정사의 치욕”이라며 그의 사퇴를 촉구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입구엔 김 대법원장을 비난하는 의미의 근조 화환이 50개 이상 놓였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이 ‘자진사퇴’라는 카드를 택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는 게 법원 안팎의 평가다. 9개월 전 녹음파일이 공개되면서 그 당시 ‘탄핵’을 언급한 건 사실로 드러났지만, 그렇다고 대법원장이 거취까지 결단할 정도의 비위를 저지른 건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대법원장의 위법한 행위가 있었다고 단정하긴 어렵다”며 “사법농단 사태의 핵심 피고인인 양승태 대법원장도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는데, 이 정도 사안으로 사퇴까지 요구하는 건 지나치다”고 말했다.
그보다는 오히려 좀 더 구체적인 해명이나, 보다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할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김 대법원장 입장에선 ‘정면돌파’인 셈이다. 다만 대법원 관계자는 “아직 그런 방안은 거론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녹음파일 공개로 드러난 부분 외에, 임 부장판사가 주장하는 또 다른 의혹마저 사실로 드러날 경우엔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김 대법원장이 2017년 후보자 지명 당시 ‘국회 로비’를 부탁했다는 의혹이 추가로 나왔는데, 대법원은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헌법재판소가 임 부장판사 탄핵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정면 대응을 피하며 관망에 나설 수도 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평소 김 대법원장 스타일대로라면 위기를 타개하기보단, 여론 향방부터 살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변호사도 “야당의 사퇴 요구보단 전국법관대표회의나 참여연대 등 진보 계열 시민단체 입장이 김 대법원장 선택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분위기 반전을 위해 ‘사법개혁 관련 쇄신안’을 마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하지만 ‘개인 문제를 조직 문제로 돌리려 하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고, 9일자로 법원행정처 차장과 기획조정실장 등 수뇌부가 교체될 예정이라, 대책 마련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