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쪽으로 무게추 기우는 미얀마 쿠데타... "7년 전 태국 데자뷔"

입력
2021.02.0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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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대규모 시위 실패… 친군부 진영만 세 과시 
유엔, 군부 규탄도 못해... 국제사회 대응도 미흡
태국 쿠데타 모델로 삼아 정국 장악해 나갈 듯

쿠데타 발생(1일) 나흘이 지나면서 미얀마 정변 사태의 무게중심이 군부 쪽으로 기울고 있다. 대규모 반(反)쿠데타 시위 계획이 무산된 데다, 국제사회의 군부 제재도 예상외로 지지부진한 탓이다. 자신감을 얻은 군부는 2014년 태국 군부의 쿠데타 시나리오를 교본 삼아 완전한 정국 장악을 위한 속도전에 돌입했다.

5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당초 4,5일 예정됐던 시민사회의 불복종 시위는 실패로 막을 내렸다. 이틀간 최대 도시 양곤과 만달레이에서 학생ㆍ의료진 430여명이 처음 거리로 나서 항의 목소리를 냈지만, 군부의 신속한 진압으로 금세 묻혔다. 이날 민주주의노동총연맹 등이 계획한 집회는 아예 열리지도 못했다. 전날 수도 네피도에서 1,000여명이 모여 세를 과시한 관제 시위대와 현저히 대비된다. 미얀마 군부의 오랜 숙적인 소수민족 저항군 카렌민족동맹 측도 “평화협정을 논의할 의향이 있다”면서 사실상 군부를 인정하는 등 ‘성공한 쿠데타’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국제 여론마저 분열돼 민주주의의 복원을 염원하는 미얀마 국민을 더욱 궁지로 몰아 넣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날 중국과 러시아의 강한 반대로 군부를 규탄하는 알맹이는 쏙 뺀 채 “깊은 우려를 표한다”는 원론적 수준의 첫 성명을 내놨다. 미국도 행정부 차원이 아닌 상원 중심의 제재안 정도가 최대치의 압박일 것으로 예상된다. 미얀마 경제에 많이 투자한 일본과 인도 정부는 공식 언급조차 삼가고 있다.

승기를 잡은 군 지도부는 이미 19번의 쿠데타를 일으킨 태국 군부의 노하우를 답습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실제 정변의 정점인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은 최근까지 짠오차 쁘라윳 태국 총리와 수 차례 밀담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동남아시아 외교가에선 2010년 ‘방콕 대시위’와 이듬해 ‘미얀마 민주항쟁’을 각각 강경 진압한 공로로 군 최고사령관에 오른 이들의 친분에 주목하고 있다.

쿠데타 이후 흐름도 2014년 태국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정변 직후 헌법을 악용해 기존 정부를 무력화한 것부터 친(親)군부 인사들의 대거 발탁, 군부 산하 평의회로 국가 의사 결정을 일원화한 일까지 죄다 판박이다. 군부가 이날 집권여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중진 윈 흐테인 등 민주화 인사 150여명을 체포ㆍ구금하고 핵심 인사들만 빠르게 기소하는 방식 역시 태국에서 똑같이 자행됐다. 미얀마 현지에선 태국 군부가 개헌을 통해 재집권에 성공했듯, 미얀마도 같은 방식으로 NLD의 입지를 축소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여러 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가자 흘라잉은 검은 속내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그는 쿠데타 당일 “공정한 선거 관리를 하려면 비상사태 1년이 끝난 뒤에도 6개월 더 군정을 할 수 있다”는 폭탄 선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권력 야욕을 위해 약속을 언제든 뒤집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도 군부의 장악력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우려한다. 정치학자인 리 모젠베서 호주 그리피스대 교수는 블룸버그통신에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을 두려워하는 군부는 반드시 NLD를 해산시킬 것”이라고 했고, 피터 멈머드 유라시아그룹 동남아 대표는 “군부가 태국 등 인접국처럼 단일정당의 의회 석권을 어렵게 하는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