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해 상반기 ‘사법농단’ 사태에 연루된 임성근 부장판사가 사표를 냈음에도 “사표를 수리하면 탄핵이 안 되지 않느냐”며 반려했다는 의혹이 3일 제기됐다. 대법원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으나, 임 부장판사 측이 ‘거짓 해명’이라고 재차 반박에 나서면서 진실 공방으로 흐르는 모습이다. 국회에서 시작된 ‘법관 탄핵’ 움직임의 불똥이 사법부 최고수장인 김 대법원장에게로 튄 것은 물론, 사법부 내부 진통으로까지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대법원은 이날 조선일보가 해당 의혹을 보도하자 “지난해 5월 말 임 부장판사 요청으로 대법원장이 면담을 가졌다”며 “(당시) 임 부장판사가 정식으로 사표를 제출하진 않았고, 대법원장은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대법원장은) 임 부장판사 건강문제와 신상에 대해 주로 이야기를 들었고, ‘일단 치료에 전념하고 신상 문제는 향후 건강 상태를 지켜본 후 생각해 보자’는 취지로 말했다”고 덧붙였다. 조선일보 보도는 사실상 ‘오보’라고 전면 부인한 것이다.
그러자 임 부장판사 측은 3시간 후쯤, 공식 입장문을 내고 “대법원에서 사실과 다른 발표를 했다”면서 대법원 해명을 반박했다. 작년 5월 22일 정식으로 사표를 냈고, 김 대법원장의 ‘탄핵 언급’도 있었다는 게 골자다. 변호인인 윤근수 변호사는 “임 부장판사가 김 대법원장 면담 직전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사표를 제출했고,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에게도 이를 보고했으며, 김 대법원장과 면담하면서 건강상 이유로 사표를 제출했음을 보고했다”고 못 박았다.
특히 김 대법원장의 ‘탄핵’ 발언 경위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윤 변호사는 “당시 김 대법원장은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사표를 수리하면 국회에서 탄핵 논의를 할 수 없게 돼 (‘내가’ 또는 ‘법원이’) 비난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며 “지금도 임 부장판사의 사표는 대법원에 보관 중”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김 대법원장이 직접 사표를 받은 적은 없다”고만 설명할 뿐, 탄핵 관련 대화에 대해선 더 이상 추가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법원 내부는 두 사람간 갈등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분위기다. 김 대법원장이 그간 '사법농단' 연루 법관 탄핵 여부에 소극적 입장을 보여온 데다, 대외적으로도 뚜렷한 입장을 표명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11월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사법농단 연루 판사 탄핵 촉구 결의안’을 냈을 때도 대법원은 침묵을 지켰다. 임 부장판사 탄핵안 발의와 관련, 지난 2일 공개된 국회 질의 답변에서도 “법관 탄핵은 국회와 헌법재판소의 권한”이라면서 말을 아꼈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대법원은 여태 법관 탄핵에 적극적이었던 적이 없다. 되레 사법부 내부 문제를 정치권으로 가져가면 안 된다는 소극적 입장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현직 판사도 김 대법원장에 대해 “사법농단 연루 판사들에 대한 징계도 모두 뭉갠 장본인”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이런 점을 고려하면 임 부장판사 사표를 둘러싼 의혹은 믿기 힘들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