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 냉골, 폐가... 이주노동자 숙소라서 상관없나요

입력
2021.02.04 04:30
9면
[밥상의 눈물] 어업 종사 이주노동자의 숙소




겨울철엔 어선 전복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망망대해에서 목숨을 잃는 선원 중 절반 이상은 외국인이다. 지난해 말 제주 앞바다에서 어선 침몰로 실종, 사망한 선원 6명 중 3명이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였다.

고등어, 김, 새우, 멸치, 주꾸미, 꽃게까지, 한국인의 밥상에 단골로 오르는 해산물 대부분이 이주노동자의 손을 거쳐 온다. 하지만, 체감온도 영하 20도의 바닷바람과 종일 싸운 이들이 겨우 몸을 뉘는 숙소는 대개 모양만 겨우 갖춘 임시 건물이거나, 곰팡이로 뒤덮인 폐가다.

지난해 12월, 경기 포천시의 한 채소농장 비닐하우스에서 캄보디아 여성 속헹(Sokkeng)씨가 사망하면서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 환경이 드러났지만, 농업뿐 아니라 공업이나 어업 쪽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곰팡이에 잠식 당한 집… “그래도 ‘난방’만 되면 호텔급이죠”

지난달 26일 전북 서해안의 한 어촌. 멀리 보이는 양식장에도, 지나는 배 위에도, 트럭 위에도, 어디에나 이주노동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일 년 내내 꽃게와 멸치, 새우를 잡다가 겨울엔 김 양식에 투입된다.

일손이 모자란 이곳에선 '근로계약서상 명시된 일만 해야 한다'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 배가 한창 자주 뜨는 성어기엔 자정쯤 출항해 새벽 4시에 잠깐 들어오고, 점심때 다시 바다로 나가 해 질 녘에 돌아온다. 눈비가 거세 배가 뜨지 않는 날은 어망 손질 등 잔업으로 바쁘다. ‘사장님 동생네’에 가서 일을 해주고 오기도 한다. 업주들 사이에선 이주노동자를 '조선 시대 머슴 부리듯' 서로 빌려주고 또 빌려 오는 게 관행이다. ‘한 달에 두 번은 쉰다’는 업주의 약속도 1년에 두 번조차 쉬기 어려운 현실에 뭉개진 지 오래다.

대부분 더운 나라 출신인 이주노동자들은 추위에 특히 약하다. 그래서 보일러만 있다면 '최상급 숙소'로 친다. 들이치는 웃풍을 막기 위해 창문은 박스테이프로, 그 밑은 단열재로 둘러막았어도 상관없다. 지난해 감금과 착취를 피해 개야도를 탈출한 인도네시아 출신 A(26)씨는 “개야도에선 집이 추워 늘 잠이 부족했는데,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은 춥지 않아서 좋다”며 웃었다.


방 식는 게 두려워 전기장판 켜고 나갔다가 불 나는 경우도



한 숙소엔 보통 같은 국적의 이주노동자 7~8명이 모여 산다. 바퀴벌레가 끊이지 않는 방구석에 살충제병이 뒹굴고, 천장은 머리가 닿을 만큼 내려앉았다. 어지럽게 얽힌 멀티탭에는 전기장판, 전기난로, 휴대폰 충전기가 한 칸도 빠짐없이 꽂혀 있다. 이부자리가 식는 게 두려워 전기장판을 켜둔 채 일을 나갔다가 누전으로 불이 나는 경우도 잦다. 그런데도 소화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둘러본 다섯 개 숙소 중 세 곳은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임시 건물이었고, 나머지는 폐가와 다름없는 판잣집이었다. 사방에 얼룩진 곰팡이 자국을 가리기 위해 뿌려 놓은 붉은색 스프레이, 찢어지고 갈라진 벽지에 덕지덕지 붙은 테이프도 눈에 띄었다. 방이 비좁아 은박 돗자리로 만든 텐트 속에서 전기난로를 켠 채 생활하는 이도 있었다. 주거비로 월 20만 원 이상을 내야 하는 농촌과 달리, 어촌에선 주거비를 따로 내진 않는다. 사실상 업주한테 ‘얹혀 사는' 꼴이다 보니, 환경 개선 요구는 생각할 수도 없다.

동티모르 출신의 4년 차 이주노동자 L(30)씨는 “화장실 한 개를 7명이 함께 쓰다 보니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출근한다”고 말했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숙소를 두고 이들은 ‘좋은 곳 중에서도 가장 좋은 곳’이라고 입을 모았다.

제 때 자고, 제대로 쉬지 못해 생긴 ‘건강 적신호’

종일 몸을 굴려야 하는 육체노동자에게 ‘쉼의 질'은 건강 및 안전 문제와 직결된다. 제대로 쉬지 못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다. 하지만 다치지 않는 이상 병원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다. 업주가 함께 동행해야 하기 때문에 ‘아프다’는 말을 꺼내기도 쉽지 않다. 김 양식장에서 공업용 화학약품을 다루다 피부병에 시달리지만, 보건소에서 주는 약을 바르는 게 전부다.


그런데도 건강보험료는 매달 12만원 가량 꼬박꼬박 내야 한다. 농어촌의 영세 사업장의 경우 사업자등록이 되어 있지 않아 여기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직장 대신 지역 가입자로 분류된다. 더 비싼 보험료를 내야 하니 체납도 빈번하다. 임금이 반년씩 밀리다 보면 체납 보험료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김호철 익산 노동자의 집 사무국장은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수백만 원을 ‘빚 갚듯’ 한꺼번에 내야 한다”며 “체납 상태에서는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건강보험은 유명무실하다"고 말했다.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사망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양망기(어망 감는 기계)에 신체 일부가 끼이거나, 배 밑을 청소하다 크레인 줄이 끊어져 깔려 숨지기도 한다. 바다에서 실종되는 경우도 많다. 한국어가 서툴고 사전 지식도 부족한 이들이 무작정 현장에 투입된 결과다. 김 국장은 “한 달에 한 두 번꼴로 외국인 노동자 사망 소식을 듣는다”고 말했다. 비용을 노동자가 부담하는 수협의 안전 교육이 있지만 고작 나흘간의 이론 강의가 전부다.

어부 중 절반이 외국인… ‘외국인 숙소는 더 이상 임시거처일 수 없다’


내국인들은 고된 뱃일을 꺼려 어촌을 떠나고, 그 빈자리를 이주노동자들이 채운다. 2019년 선원통계연보에 따르면 국내 원양어선의 경우 10명 중 7명(65%), 연근해 어선은 10명 중 4명(38%)이 외국인 선원이다. 한국인 어부 대다수가 50대 이상 고령자인 점을 감안하면, 배를 타는 이주노동자의 비율은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주노동자들의 숙소 문제는 장기적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폐교한 초등학교 분교나 폐업 모텔을 리모델링해 ‘공동 기숙사’로 활용하는 방안도 제시한다. 여러 사업주가 ‘협동조합’을 꾸려 공동 관리하는 형태다. 김 국장은 “고용 알선은 나라에서 하면서, 숙소의 질은 사업주의 재량에 따라 결정되는 상황”이라며 “지금이야말로 보다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못 참겠으면 돌아가라’고? 이들이 돌아가면 우리의 밥상은 무사할까

동티모르 출신 8년 차 노동자 J(30)씨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배운 말이 “야 이, 시X놈아”였다. 그 후 거친 폭언과 인격모독, 생명을 위협하는 과로 등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다룬 기사엔 ‘못 참겠으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댓글이 무수히 달린다. 이들이 정말로 돌아간다면 우리의 밥상은 누가 지탱해 줄 수 있을까. 김 국장은 반문한다. “이런 헐값에 이 힘든 일을 할 사람들이 있을까요?”


박지윤 기자
이누리 인턴기자
서동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