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친구들 없으면 일 안 돌아가요. 김 양식장 인부 95%가 이주노동자라고 보면 됩니다. 정부 통계랑 현장은 정말 달라요."
전남 진도에서 김 양식장을 30년째 운영해온 박연환(57)씨는 1일 오전 조업을 마친 뒤 이같이 말했다. 박씨와 함께 새벽마다 양식장으로 향하는 노동자는 모두 7명. 고용허가제(E-9 비자)를 통해 입국한 베트남(4명) 스리랑카(2명) 인도네시아(1명) 출신이다.
박씨를 비롯한 전남 일대 어업인들에 따르면 어촌에서 선주(船主)를 제외하면 한국인 노동자가 종적을 감춘 지는 5년이 넘었다. 바닷일이 휴일도 없이 날씨만 좋으면 배를 띄워야 하는 고된 일이라 국내 노동자들은 이곳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진도 일대 양식장은 박씨의 양식장처럼 한국인 선주 1명에 이주노동자 5명 정도가 한 조를 꾸려 일한다. 박씨는 "이주노동자들 없으면 한국 사람들은 김 없는 김밥을 먹어야 할 판"이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주노동자들이 급격한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일손 부족이 심각한 농어촌에서 우리 밥상에 올라올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다. 1993년 우즈베키스탄 산업연수생 923명이 처음으로 농촌 현장에 투입된 지 28년이 지난 지금, 이주노동자들은 우리 농어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발전했다.
2일 통계청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에 따르면 한국 농촌 인구는 1995년 485만명에서 2019년 224만명으로 250만명 이상 감소했다. 20년 남짓한 기간에 농가 인구의 절반 이상이 줄어든 셈이다. 더 큰 문제는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이다. 농촌 인구 가운데 70세 이상이 33.5%이고, 60세 이상으로 범위를 넓히면 60.6%에 달한다. 그나마 남아 있는 농촌 인구 중에서도 일할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어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018년 기준 어촌 인구는 10년 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 11만명을 간신히 넘겼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18년 농업경영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손 부족’(49.5%)과 '후계인력 부재'(22.4%)가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혔다. 텅 빈 농어촌 현장은 이주노동자의 땀으로 채워지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E-9 비자를 통해 입국한 2만7,539명의 이주노동자가 국내 농축산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단기 고용비자로 들어온 계절근로자(E-8)와 미등록체류자까지 더하면 농어촌 전체의 이주노동자는 5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주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대표적 농촌 업종은 수작업 의존도가 높은 방울토마토와 파프리카 시설재배업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특용약물 재배업에 종사하는 전체 근로자의 47%가 이주노동자다. 원예와 채소산나물도 이주노동자 비율이 각각 37.5%와 36%에 달한다. 경기 남양주에서 화훼농장을 운영하는 김모(65)씨는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2명 덕분에 지난 4년을 버틸 수 있었다"며 "임금문제나 노동강도 때문에 한국인 노동자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라고 말했다. 엄진영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미등록체류자까지 합하면 실제 이주노동자 기여도는 50% 이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어업은 이주노동자 의존도가 농업보다 더 크다. 특히 지난해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일손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인력난이 더 심각해졌다.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코로나19로 입국을 취소한 어업분야 이주노동자(E-9)는 90%가 넘는다. 박연환씨는 "옆집만 해도 김 양식을 시작했지만 사람을 못 구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군산은 양식업이 아예 마비가 됐다"고 전했다. 김호철 전북 익산 노동자의집 국장은 "호남지역은 김 양식과 꽃게·전어·쭈꾸미·멸치 조업 등에 이주노동자 비중이 80% 정도"라며 "코로나19로 사람을 못 구하자 이주노동자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농어촌에 이주노동자가 늘어나면서 지역 경제도 이들의 도움으로 버티고 있다. 마트와 요식업 등 서비스업 매출의 상당 부분을 이주노동자 소비로 채워나가고 있다는 게 주민들의 이야기다.
전남 고흥에서 40년째 개인택시를 운전한 배춘구(63)씨는 "고흥 택시 손님의 80%가 이주노동자"라며 "교통편이 마땅치 않아 물건 사러갈 때나 읍내에 이동할 때 택시를 자주 이용한다. 우리는 상부상조하는 관계"라고 전했다. 배씨는 이 일대 외국인들에게 '배 아저씨'로 통하며. 지난 10년간 손님으로 모신 이주노동자만 1,000명이 넘는다.
고흥은 전체 인구 6만 5,341명 가운데 39.3%(2만 5,691명)가 65세 이상일 정도로 초고령화가 심각하다. 고흥 대화면에 거주하는 김모(76)씨의 슈퍼마켓은 매출의 절반 이상이 이주노동자로부터 발생하고 있다. 김씨는 "10년 전인가, 처음 외국인들이 마을에 나타났을 땐 좀 께름칙했는데 같이 살다 보니까 우리랑 똑같더라"며 "이제는 그냥 이웃주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