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 눈폭풍 이란을 삼키다

입력
2021.02.0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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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1972년 이란 블리자드


아라비아 반도의 사막 도시 카타르 도하 전통시장에서 두꺼운 패딩 외투가 즐비하게 진열된 모습을 기이하게 여긴 적이 있다. 일교차가 크다곤 해도 도하의 겨울(12~2월) 기온은 대체로 섭씨 14~25도 사이를 오르내린다. 드물게 밤 기온이 10도 아래로 떨어지는 날이 있는데, 그게 현지인에겐 사무치게 추워서 동사하는 이도 있다는 말을 현지인에게서 들었다. 그 정도면 한국의 가을(9~11월) 평균 기온(약 15도)이다.

반건조기후인 이란 수도 테헤란의 2월 기온은 2020년 기준 최저 영하 7도에서 최고 영상 19도였고, 영하로 떨어진 날은 29일 중 닷새에 불과했다. 겨울도 건조하고 대부분 맑아 비가 오는 날은 평균 3~4일에 불과하고, 드물게 눈이 와도 강설량은 미미하다.

1972년 2월 3일부터 무려 일주일간 살인적인 눈폭풍(blizzard)이 이란을 강타했다. 쉼 없이 퍼부은 눈의 적설량은 최소 3m, 최대 7.9m에 달했고, 기온도 영하 25도까지 떨어졌다. 눈폭풍을 피해 집에 머문 이들 다수가 말 그대로 눈에 파묻혔고, 눈이 얼면서 최소 4.000여명이 숨졌다. 200여개 마을이 마비되다시피 했고, 남부 카칸(Kakkan)과 셰클랍(Sheklab) 같은 곳은 마을 전체가 눈에 파묻혀 각각 수백명 주민 전원이 동사했다. 앞서 약 4년간(1968~1971년) 극심한 가뭄을 겪은 뒤의 참사였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눈폭풍 참사로 기록된 저 이변을 겪고도 현대 기상과학은 왜 하필 이란이었고 그 시점이었는지, 언제 어디서 유사한 일이 재발될 수 있는지 납득할 만한 설명과 예측을 내놓지 못했다. 물론 이란 참사의 경우 눈폭풍 자체가 워낙 드물어 대비가 부실했던 게 사실이지만, 그 정도 눈폭풍이라면 아무리 문명화한 도시여도 공동체 기능이 무력해지고 재난 대응시스템이 무의미해질 수 있다. 2008년 아프가니스탄에 몰아친 눈폭풍은 92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기후 위기가 본격화할수록 기상은 더 거칠고 예측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