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도심 재개발구역 화재로 일가족 3명 사망, 2명 부상

입력
2021.01.3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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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새벽 강원 원주시의 재개발 지역에서 불이 나 외국인 할머니와 외손주 등 일가족 3명이 숨졌다. 아이의 엄마와 이웃 주민 등 2명은 중화상을 입었다.

강원경찰청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3시 5분쯤 원주시 명륜동 재개발구역 내 주택가에서 불이 났다.

이 불로 안방에서 잠자던 필리핀 여성 A(73)씨와 이 여성의 외손녀(9), 3월 입학 예정인 외손자(7) 등 3명이 숨졌다. 함께 잠을 자던 아이들의 엄마 B(32ㆍ필리핀 국적)씨는 얼굴과 손 등에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B씨는 연기를 들이마셔 호흡곤란에 빠진 상태로 창문가에 매달려 있다가 이웃 주민들에 의해 가까스로 구조됐다. 이어 갑자기 주택 전체가 화염에 휩싸이는 바람에 다른 가족들은 구조되지 못했다.

옆 집에 사는 C(65)씨도 손과 다리 등에 화상을 입어 같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A씨는 지난해 딸 B씨의 초청으로 입국해 외손주를 돌봐왔다. 원주시 외곽의 공장에 다니던 B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일감이 줄어들면서 수개월 전 실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의 남편은 지난해 12월 출국해 중국에서 용접 일을 하고 있다. 중국 현지에서 사고 소식을 접한 B씨 남편은 긴급 귀국 절차를 밟고 있다고 경찰은 전했다.

불이 난 곳은 재개발 예정지로 지정돼 오는 9월 철거를 앞둔 지역이다. 20여채의 주택이 빽빽이 모였으며, 골목이 좁아 소방차 진입이 불가능했다.

소방대원들은 소방차 진입이 안되자 지상 소화전에 호수를 연결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불은 주택 4채를 태운 뒤 1시간 20분 만에 진화됐다.

경찰은 이날 화재가 C씨 집에서 처음 시작돼 인근 B씨 집 등으로 옮겨 붙은 것으로 보고 있다. C씨는 경찰에서 “타는 냄새가 나서 깨보니 방안에 켜놓은 석유난로 쪽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어 밖으로 뛰쳐나왔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석유난로 취급 부주의로 불이 났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가족을 한꺼번에 잃은 B씨의 정신적 충격이 너무 커 피해자 조사가 어렵다”며 “최초 발화지점 등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합동 감식작업을 벌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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