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세 여성 이 모씨는 몇 년 전부터 서서히 시작된 기억력 저하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어머니가 80세 무렵 알츠하이머형 치매 진단을 받았고, 돌아가시기 전에는 가족들도 알아보지 못했던 가족력이 걱정돼 정밀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던 것입니다. 검사 결과 이 씨는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경도인지장애로 진단됐습니다. 현재 이 씨는 규칙적인 운동과 대인관계, 식단관리, 인지중재훈련 등을 통해 치매로 진행되는 것을 막고 수 년간 경도인지장애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 68세 여성 최 씨 역시 기억력 저하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는 4년 전 남편이 외도를 한다고 의심하며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 조현병을 진단받고 치료받은 환자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력이 점차 나빠지기 시작해 치매 평가 검사를 받았고, 그 결과 기억력, 판단력, 언어능력 모두 현저히 떨어진 알츠하이머형 치매로 진단받았습니다. 최 씨와 남편은 식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최 씨의 언니가 5년 전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인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습니다.
위 두 사례는 모두 가족성 알츠하이머병(Familial Alzheimer's disease)입니다. 가족성 알츠하이머병은 넓게는 가족 구성원 내에서 알츠하이머병이 두 명 이상 있을 때를 의미하고, 좁게는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 알츠하이머병이 가족 간에 유전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족 중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있으면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은 높아집니다.
PSEN1, PSEN2, APP 유전자 변이는 65세 미만에서 증상이 시작되는 조발성 알츠하이머병(Early onset Alzheimer's disease)의 대표적인 원인이 되고, 아포지단백 E 유전자(Apolipoprotein E genotype)의 E4 대립 유전자는 65세 이후에 증상이 시작되는 만발성 알츠하이머병(Late onset Alzheimer's disease) 위험을 높이는 대표적인 유전 요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 같은 유전 요인 외에도 만성질환과 생활습관 또한 가족성 알츠하이머병에 영향을 주는데 고혈압, 당뇨, 비만, 흡연, 음주 등이 치매를 일으키는 위험 인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혈압, 당뇨와 같은 특정 만성질환은 가족력이 있으면 발병 위험이 높으며, 가족들의 생활습관 또한 유사한 경향을 보이게 됩니다.
따라서 유전적, 비유전적인 요인에 의해 가족 중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있다면,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은 증가할 수 있습니다.
가족 내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있다는 사실을 가족 구성원이 알고 있는 것은 모두에게 도움이 됩니다.
먼저 자신을 알츠하이머병 고위험군으로 인식하고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을 낮추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치매 발병을 늦추거나 예방할 수 있습니다.
치매는 인지 저하로 인해 일상생활을 독립적으로 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알츠하이머병이 발병하더라도 치매 상태에 이르기까지는 10~15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따라서 알츠하이머병 가족력이 있는 분들은 치매를 유발할 수 있는 위험 요인인 만성질환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금주·금연, 규칙적인 운동을 실천해 치매 발병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가족을 통한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직접적 혹은 간접적 경험은 알츠하이머병을 조기에 진단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치매 진단이 늦어지는 가장 흔한 이유 중 하나는 퇴행성 뇌질환에 의한 인지저하를 단순 노화 현상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이 초기에 적절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오랜 시간이 경과해 치매를 진단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가족은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이 어떠한 증상을 보이는지 알기에, 기억력 저하 등 알츠하이머병 초기에 나타나는 증상들을 단순 노화 현상으로 간주하지 않게 됩니다. 때문에 알츠하이머병 진단에 필요한 평가를 적절한 시점에 받아 조기에 알츠하이머병을 적극적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알츠하이머병의 경과와 예후에 대해 알게 됨으로써 알츠하이머병에 걸렸을 때 어떤 치료와 돌봄을 받을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준비할 수 있습니다. 최경도와 경도 단계의 치매 환자는 판단력이 유지돼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으나, 중등도와 중증 단계의 치매 환자는 의사 결정을 스스로 하는 것이 어려워, 환자보다 보호자들의 의견이 환자의 치료와 돌봄을 결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가족 중 알츠하이머병을 경험했다면 질병의 경과에 따라 어떠한 의사 결정이 필요한지를 이미 알기에, 환자 본인의 판단과 선택에 기반을 둬 필요한 의사 결정을 미리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가족 내 알츠하이머병 발병 사실을 아는 것은 알츠하이머병을 예방하고, 발병 시 조기 진단해 적절한 치료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앞선 이 씨 사례는 어머니의 알츠하이머형 치매력을 알았기 때문에 조기에 치매 평가를 받고 적절한 관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최 씨는 언니의 알츠하이머병 발병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조금 더 일찍 검사를 받고 충분히 관리가 가능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사례입니다.
치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죄책감, 비난에 대한 두려움 탓에 여전히 치매 발병을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분들이 치매 환자라면 가족들을 알아보지도, 대소변을 가리지도 못하는 중증의 치매 환자를 떠올리는데, 실제로 중증 치매 환자는 전체 치매 환자의 15%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많은 치매 환자들은 적절한 치료와 주변인의 돌봄을 통해 이전과 같이 일상생활을 누리면서 올바르고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합니다.
또한 치매는 개인의 도덕적인 문제, 잘못된 생활 습관, 정신질환 등에 의해 발병하기 보다는 유전적인 요인과 환경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것이므로, 이를 개인이나 가족들의 잘못으로 치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알츠하이머병은 위험 요인을 관리해 이를 예방하거나 진행 정도를 늦출 수 있습니다. 적절한 치료와 관리, 돌봄으로 기존의 일상생활을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는 질환입니다. 알츠하이머병을 진단받았다면, 우선 가족들에게 이를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족력은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을 높이고, 가족력을 알고 있는 것이 알츠하이머병의 예방과 조기 진단, 적절한 관리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알츠하이머병 진단 사실을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알리는 것이, 그들이 알츠하이머병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관리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