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통진당) 행정소송 개입 등 일명 ‘사법농단’ 사건의 실무자 역할을 한 것으로 지목된 이민걸(60)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과 이규진(59)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에게 검찰이 징역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 윤종섭)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이 전 기조실장과 이 전 상임위원에게 각각 징역 2년 6월을 구형했다. 함께 기소된 방창현(48)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에게는 징역 1년 6월을, 심상철(64) 전 서울고법원장에게는 징역 1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날 사법농단 사건을 ‘내부로부터 법관 독립을 침해한 사건’으로 규정하며 엄중한 처벌을 요구했다. 검찰은 “상고법원이나 헌법재판소 상대 위상 강화 등 사법부의 정책적 목적이 재판 활용과 결부돼, 재판이 사법부 조직 이기주의의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헌재 파견 법관은 자신을 ‘부조리극의 주인공’이라고 한탄했고, 당시 행정처 심의관은 ‘이게 조직논리인가’며 절망했다”고도 강조했다. 또한 “재판부를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재판 당사자들은 배후 세력까지 설득해야 함을 알지 못했던 자신의 순진함을 한탄해야 했다”고도 지적했다.
검찰은 특히 그 동안 사법농단 사건들의 1심 판결에서 줄줄이 무죄가 선고된 상황을 비판하기도 했다. 현재 7개 사건 중 1심 판결이 난 4개 사건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은 “1심 판결들이 편의적, 자의적으로 죄형법정주의의 허울을 내세워 면죄부를 주는 것에 국민들은 절망하고 ‘또 하나의 사법농단’이라 비판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통해 법관 독립의 파괴가 예외적, 일시적 상황이었음이 인정됐으면 한다”고 구형 의견을 마쳤다.
이 전 기조실장은 최후진술에서 “제게 주어진 역할과 임무를 제대로 행하지 못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오만한 마음과 사상에 젖어 놓쳐버린 일이 후회스럽고 마음이 아팠다. 이런 부분에 대해 앞으로도 계속 반성하고 견제하면서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이 전 상임위원은 “검찰 조사보다 재판 과정이 더 힘겨웠고 제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웠던 시간이었다”며 “형사 책임 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제가 대법에서 근무하며 했던 행동이 부적절한 게 많았다는 걸 잘 알고 있고 뉘우치고 있다. 앞으로는 이와 같은 기소와 재판은 없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대법원의 ‘통합진보당 행정소송 재판 개입’에 연루돼 2019년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직 당시 법원행정처는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 및 소속 국회의원 의원직 박탈 결정에 대해 대법원에 심판권이 있다’는 판결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해, 해당 재판부에 접촉해 법원행정처 의견을 전달했다.
검찰 조사 결과, 이 전 기조실장과 이 전 상임위원은 통진당 사건 재판부에 ‘법원행정처가 수립한 판단 방법’을 전달한 사실이 드러났다. 방 부장판사는 당시 전북지역 통진당 비례대표 지방의회의원들이 낸 ‘퇴직 처분 취소 소송’ 1심을 심리하면서, 법원행정처에 사건에 대한 자신의 심증을 드러내고 법원행정처 입맛에 맞게 일부 판결 이유를 수정한 것으로 조사됐다. 심 전 법원장은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배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전 기조실장은 당시 재판을 받고 있던 국민의당 박선숙ㆍ김수민 의원에 대한 재판부의 유ㆍ무죄 심증을 보고 받아 국민의당에 전달한 것으로도 파악됐다. 이 전 상임위원은 헌재 파견 법관으로부터 헌재 내부 동향과 평의 내용 등을 꾸준히 보고받은 혐의도 있다. 두 사람은 법원행정처 정책에 비판적인 법관을 탄압하기 위해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를 시도하는데 관여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이들에 대한 선고공판은 다음달 18일 오후 2시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