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인숙 의원 "정책 전 영역 총괄할,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 만들어야"

입력
2021.01.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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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끝>'성평등위원회'로 가자

편집자주

2021년 1월 29일은 여성가족부 출범 20년이 되는 날입니다. 2001년 출범한 여성가족부는 21세기의 상징이지만, 그 상징성 때문에 무용론, 폐지론에도 시달려왔습니다. 여성가족부의 미래를 전망해봅니다.


성갈등을 조장한다는 격한 공격을 받고, 부처 간 장벽에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여성가족부는 올해 스무 살, 성년을 맞이했다. 여가부의 미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지난 19일 이 주제를 두고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만난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런 얘기부터 꺼냈다.

"2018년 서울 혜화역에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한참 열렸을 때예요. 시위장엘 들렀다가 국무총리와 장관들이 모이는 현안 보고 자리에 가서 지금 여성들이 왜 이런 시위를 하는지, 페미니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하고 함께 논의했지요. 그 때 '만약 성평등위원회와 그 아래 사무국이 있고, 대통령 주재 하에 이런 자리가 자주 마련된다면 국가의 성평등 정책 전반을 조정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평등 문제를 다루는 정부기구라면, 성평등이라는 문제의 특성을 감안할 때 특정 부처보다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 형태가 더 낫다는 주장이다.

보호에서 평등으로, 여성들의 욕구가 변했다

권 의원은 여가부 자체에 대한 평가는 박하지 않았다. 최근엔 △젠더폭력 피해 지원 시스템 마련 △여성폭력방지법 제정(2018년) △성인지통계 시스템 구축 같은 성과도 있었다. “성폭력·가정폭력·성희롱·성매매 피해자 보호시스템을 촘촘하게 마련했고, 여성폭력방지법에서는 ‘2차 피해’를 규정하고 방지 책무를 명문화했어요. 성인지통계시스템을 체계화해 우리가 왜 성평등 정책을 펼쳐야 하는가에 대한 근거를 제시할 기반도 만들었죠."



그럼에도 여가부에 대한 평가가 박한 가장 큰 이유로 권 의원은 우리 사회의 전반적 변화, 그 자체를 꼽았다. 20년 전 여성부가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여성정책이란 곧 약자에 대한 지원 정책'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지금 젊은 여성들은 그 수준을 뛰어넘어 "노동, 돌봄, 교육 등 각 영역에서 성평등 정책을 강하게 요청"하고 있어서다.

2017년부터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을 지내면서 권 의원은 이런 변화를 피부로 느꼈다. “요즘 여성들은 더 이상 '결혼' '가족'을 중심으로 인생을 설계하지 않아요. 그보다는 본인의 일과 커리어를 중심에 두고 삶을 설계하죠. 거기서 새로운 요구가 솟아나온 것이고요. 이 변화, 희망, 요구 같은 걸 어떻게 받아낼 것인가, 그게 앞으로 여가부가 짊어져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해요.”

거기다 여가부의 소극적 태도까지 겹쳤다. 특히 지난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사건에서 여가부는 회피하고 움츠러들기만 했다. “여가부야말로 다른 부처와는 달라야 해요. 다른 부처는 객관적인 입장을 지켜야 하니까 이슈 대응에 조심스러워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여가부만큼은 ‘검찰 조사가 안 끝났으니까', '법원 판결이 나지 않았으니까’라며 자꾸 물러서면 안 돼요. 모든 결과가 다 나오고 그걸 근거로 움직이려 한다면 '피해자 보호'라는 여가부의 존재 이유는 실패하는 것이죠."

여가부의 한계는 우리나라의 한계

그렇기에 여가부가 보여주는 한계는, 정부 부처의 한계일 뿐 아니라 국가의 한계를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성평등은 크게 봐서 국가 통치의 원리로 자리잡아야 하는 것인데, 이걸 여가부 장관이 할 수 있을까요. 대통령이 목적의식적으로 실천해야 가능한 일이죠." 업무는 각 부처를 컨트롤해야 하는 일인데, 담당은 부처 장관이다.

권 의원은 “예를 들어 4월 국가재정회의에서 예산을 조정할 때, 여가부 장관이 성별 임금 격차 해결 방향을 제시하고 이게 받아들여져 기획재정부가 성인지 예산을 제대로 짜는 일이 생길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여가부를 두고 “여가부 장관이 할 수 없는 일을 장관에게 맡겨 놓은 상황”이라 부르는 이유다.



다른 예도 들었다. “독일은 지금 남성 청소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요. 디지털 성폭력과 여성혐오 문제가 함께 적용되는, 굉장히 시급한 사안이라 보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처럼 교육부는 ‘학교 안 청소년’, 여가부는 ‘학교 밖 청소년’을 담당하는 체계에서는 통합적 접근이 사실상 어렵죠."

성평등위원회로 제대로 된 예산 짜야

그렇기에 권 의원의 결론은 ‘성평등위원회’ 설치였다. 성평등 업무를 확산한다는 이유로 현재 8개 부처에다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을 두는 것 정도론 어림없다. 여가부는 실무적 행정기관으로 남겨두고, 그 위에 성평등위원회를 둬서 "위원회가 성평등 정책의 방향을 대통령과 함께 논의하고, 제대로 된 예산을 받아낼 수 있는 기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상되는 일부 남성들의 극렬한 비판과 반대에 대해 권 의원은 정치권이 적극 나서야 할 일로 봤다. "현실의 불만을 상대 성(性)에 전가하는 것은 제대로 된 문제 해결방식이 아니지요. 그런 문제일수록 정치인들이 먼저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대안을 제시해서 갈등이 깊어지지 않게 해야죠."

박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