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 중 4500원 떼이는 대리기사... '착취의 신세계' 플랫폼

입력
2021.01.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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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업종·형태를 가리지 않는다


부산의 대리운전 기사 박재순(61)씨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1만 원짜리 대리 '콜(배차)'을 받고, 일을 하고, 손에 쥐는 돈은 5,500원. 나머지 4,500원은 왜 없어지는 걸까.

우선 앱을 운영하는 대리운전 업체에서 고객이 내는 돈의 20~30%를 중개 수수료로 떼간다. 이게 끝이 아니다. 박씨는 "앱 바깥에서도 전통적인 방식의 중간착취가 여전하다"라고 전했다. 매일매일 출·퇴근용 셔틀버스비 3,000원과 프로그램 사용료 500원을 낸다. 부산 대리기사 5,000여명이 매일 셔틀비 3,000원씩 한달 내면 4억원이다. 셔틀 운영비용은 월 1억원 정도이니, 업체는 대리 콜 수와 상관없이 기사가 많아지면 이익이다.

매달 10만원 가량의 보험료도 낸다. 기사들은 여러 곳의 대리운전 업체에 동시에 등록하는데, 업체마다 단체보험에 중복 가입하면서 보험료가 불어난다. 박씨는 "대리운전 업체에서 보험사에 주는 원 금액은 월 5만원 안팎"이라며 "나머지 5만원은 어디로 가나"라고 분노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파견·용역 형태로 이뤄지던 전통적인 방식의 '간접고용'은 새롭게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한 플랫폼을 통한 노동 중개 사업이 대표적. 배달 및 대리운전, 가사·돌봄 서비스를 비롯해 업종을 막론하고 노동자들을 간접고용의 영역에 편입시켰다. 전체 간접고용 노동자 수의 추정치만 346만 명(국가인권위원회·2019년)에 달할 정도이다.

그러나 쉽고 편리해 보이는 '멋진 신세계'의 이면에는 소비자가 알지 못하는 막대한 중간착취의 시장이 움직이고 있다. 기존 파견·용역업체가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의 대가 100만원 중 90만을 떼어가도 불법이 아니듯, 플랫폼 노동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수수료 제한없는 플랫폼의 폭주

서너 개의 가사서비스 중개 앱을 통해 일감을 받는 10년차 가사 노동자인 염모(53)씨는 여럿 생긴 플랫폼으로 오히려 등골이 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엇보다 이전보다 높아진 중개료가 부담이다. 염씨는 "직업소개소에는 매달 회원비로 4만~5만원 정도를 냈다”라고 했다. 이는 월급의 3% 이내 금액이다. 그러나 그에게 최근 3시간짜리 가사 노동을 중개해준 앱이 가져간 몫은 고객이 낸 금액의 30%에 달한다. 고객이 지불한 돈은 4만6,000원이었지만 염씨가 손에 쥔 돈은 3만원에 불과했다.

이런 이유로 플랫폼을 통한 가사 노동을 거부하는 전국가정관리사협회의 김재순 협회장은 "앱을 통한 플랫폼 노동을 시작하고 수입이 줄어들었다는 이들이 주변에 많다"면서 "플랫폼을 막을 수 없지만 최소한의 보호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리운전 기사 한기석(54·남)는 한탄했다. “카카오도 대리운전 콜 당 수수료가 20%다. 타 직종은 보통 10%인데 대리기사는 20~30%를 낸다. 현대판 착취다. 대리기사 관련 법이 없어서 업체들이 악용하는 것이다. 일본은 과거부터 대리운전자 법이 있었다.”

정부가 추산하는 플랫폼 노동자의 수는 179만 명(2020년 기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의 지난해 1월 발표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8.22시간 일하지만 월 소득은 152만원에 그쳤다. 용역·파견업체 못지 않게, 때론 그 이상으로 간접고용 노동자의 고혈을 말리고 있다는 종사자들의 증언이다.

플랫폼 노동은 근로기준법의 바깥에 있어 수수료를 비롯한 노동자 보호에 대한 규제가 없다. 정부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닌 플랫폼 종사자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갈 길은 멀다. 특별법의 골자는 IT업계와 배달 기사, 대리기사 등 16개 직종 별로 '표준 계약서'를 개발해 보급하겠다는 내용이다. 표준 계약서에는 수수료 지급 기준이나 금액을 명시하도록 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높은 수수료에 대한 직접 규제가 없는데다, 표준계약서 도입은 권고 사항에 불과해 활용 가능성은 미지수다.

공공기관의 황당한 중간착취

보통 공공기관이 일반 파견·용역업체와 같은 중간착취를 할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황당한 이유로 공공기관에서도 중간착취가 이뤄진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자회사인 코레일네트웍스는 2004년 설립됐고, 주요 역 매표와 광역철도 역무·철도 고객센터 업무 등을 코레일로부터 위탁받았다. 그러나 아직껏 소속 1,800명 노동자의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인 170만원(세전) 정도이다.

역무원과 역장의 직무수당은 각각 4만원과 7만원이지만 월급은 175만원으로 같다. 직무수당을 제외한 기본급은 오히려 역장이 더 낮다. 2019년 단체교섭을 통해 임금 수준을 개선하고 일부 직종은 시중노임단가 100% 적용을 약속했으나 공염불이 됐다. 정부 공공기관 예산 편성 지침(연 임금 인상이 4.3%를 넘어설 수 없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재유 민주노총 코레일네트웍스지부장은 "말이 좋아 코레일 자회사지 실제로는 최저임금을 받는 코레일의 하청업체나 용역회사 직원"이라고 꼬집었다.

서 지부장은 "원청은 코레일네트웍스에 인상된 노임단가를 기준으로 용역비를 내려보냈으나 하청에서 지침에 맞지 않는다고 지급을 거부했다"라면서 "이 임금 인상분은 다시 코레일이 배당수익으로 가져간다"고 전했다. 일반 용역업체처럼 중간에서 착복하지는 않았더라도, 황당한 이유로 노동의 대가가 떼인 셈이다. 원청은 생색만 내고 아무런 손해도 보지 않게 됐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 워낙 임금이 낮으니, 이 경우에 구제할 방법을 강구할 법도 하지만 손을 놓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의 책임 떠넘기기다. 기재부에서는 "예산편성지침을 바꾸는 것은 어렵지만 코레일네트웍스는 기타 공공기관이라 국토부가 결정하면 시중 노임단가 100%를 지급할 수 있다"라는 입장이다. 반면 국토부는 "기재부의 예산편성지침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코레일과 코레일네트웍스측 역시 "정부 지침으로 인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라고 버티는 상황이다.

중간착취 여부와는 별도로 공공기관의 자회사 설립 과정에서 애초의 약속조차 지켜지지 않아 노동자들이 신음한다.

"자회사에서 처우 개선 시켜준다는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전환에 동의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안 왔죠." 한국도로공사가 설립한 자회사 '한국도로공사서비스'의 이대한 노조위원장의 후회다. 도로공사와 직접고용을 두고 갈등을 빚던 요금 수납원 중 약 5,000여 명은 자회사행(行)을 택했다. 1년여가 흐른 지금 원청이 약속했던 경·조사비나 학자금 등의 복지 및 처우 개선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존의 용역계약을 답습, 복지 등을 위한 비용이 따로 책정되지 않은 탓이다.

노동자들의 임금은 소폭 올랐으나, 이마저도 시간 외 근무 등 실적급이 없는 사람들은 큰 변화가 없다. 이들은 평균 200만원 초반의 월급을 받는다.

물론 자회사 전환으로 고용불안은 어느 정도 해소되지만, 기존의 용역계약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간접 고용'의 폐해를 답습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자회사 설립에는 보통 원청 낙하산들이 등장해 한몫 챙기면서, 필연적으로 현장 노동자들의 노동의 대가는 떼일 수 밖에 없다. 지난해 6월 말까지 정규직으로 전환된 공공부문 소속 비정규직(18만5,267명) 중 본사가 아닌 자회사에 고용된 비율은 4명 중 1명(25.3%)이었다.

▶간접고용 노동자 100명에게 들었다 인터랙티브 바로 가기https://interactive.hankookilbo.com/v/indirect_labor/


전혼잎 기자
남보라 기자
박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