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인접한 북중미 양국 정상과의 전화 통화를 시작으로 정상 외교에 시동을 걸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공조가 명목상 화두였지만, 실질적인 화제는 일찌감치 공언한 ‘트럼프 적폐 청산’이었다.
외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의 첫 정상 통화 상대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였다. 22일(현지시간) 약 30분간 진행된 전화 회담에선 백신 공급을 비롯한 코로나19 관련 양국 협력 방안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고 캐나다 CBC방송이 보도했다.
그러나 불편한 논의도 불가피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뒤 첫 행정명령으로 양국 간 ‘키스톤XL’ 송유관 건설 사업 승인을 취소했다. 환경 보호 차원에서다. 2008년부터 추진된 해당 사업은 캐나다 산유지 앨버타주(州)와 미 텍사스주를 잇는 대형 송유 시설 건설 프로젝트로, 2015년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중단됐다가 2017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재개됐는데, 이날 통화에서 트뤼도 총리가 실망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업 취소가 오바마 전 대통령의 결정을 복원하려는 취지의 선거 공약이었음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과의 통화도 같은 날 이뤄졌다. 23일 백악관이 전날 두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전하며 바이든 대통령이 “전 정권의 가혹한 이민 정책을 뒤집는 계획을 언급했다”고 전했다. 백악관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합법적 이민 경로를 늘리는 등 불법 이민 문제의 근본적 해결 의사를 멕시코 측에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멕시코 국경의 장벽 건설을 중단시키는 등 이미 '트럼프 이민 정책' 뒤집기에 나선 상태다.
멕시코 측 반응은 호평이다. 22일 트위터에 “바이든 대통령과 이민과 코로나19 문제를 논의했다”며 “통화는 우호적이고 정중했다”고 밝힌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23일 “미국이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등 중미 국가들의 개발을 돕기 위해 4년간 40억달러(약 4조4,200억원)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고 공개했다.
세 번째 통화 상대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였다. 유럽 정상 가운데 처음이다. 23일 통화에서 다자 협력을 통한 기후변화 대응 및 코로나19 확산 방지 방안 등에 대해 두 정상이 대화를 나눴다고 양국 정부가 공통적으로 밝혔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등 동맹 강화에 뜻을 함께했다는 데에도 이견이 없었다.
다만 무역협정에 대해선 입장이 달랐다. AP통신은 새 무역협정 체결을 영국이 일방적으로 요구했다고 전했다. 백악관은 두 정상 간 통화에 대한 성명에서 무역협정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22일 “새 무역협정을 위한 일정을 아직 잡지 않았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 지명자도 인사청문회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우리 노동자와 기반 시설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기 전에 어떤 자유무역협정(FTA)에도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올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한 영국은 다른 나라와의 FTA 체결이 시급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에겐 최우선 관심사가 자국 내 노동자 일자리인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전화 외교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사키 대변인은 22일 “첫 해외 순방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코로나19 대유행의 영향이라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