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이냐 정의냐, 미국의 고민

입력
2021.01.22 18:00
22면
트럼프 기소 여부 두고 美 사회 의견 분분 
전직 대통령 불기소 전통도 논란 휩싸여 
사면  논란 겪는 한국의 고민과 맞닿아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시대는 끝났지만 트럼프의 정치 리얼리티 쇼는 아직 막을 내리지 않았다. 하원에서 두 번 탄핵당하는 등 각종 진기록을 세운 그가 도전하는 또 다른 종목은 사상 처음 감옥에 가는 전직 대통령이 되느냐다.

의회 난입 선동을 비롯해 사법 방해, 탈세, 불법 대출 등 각종 혐의를 받는 트럼프를 검찰이 실제 기소해 법의 심판대에 올릴지를 두고 미국 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전직 대통령을 기소하지 않는 미국의 정치 문화와 트럼프 처벌을 원하는 지지자 사이에서 바이든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요컨대 국민 통합과 정의 실현 사이의 딜레마로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을 두고 제기된 우리 사회의 논란과 맞닿아 있다.

사실 46대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그 오랜 기간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전례가 없는 미국의 정치 전통은 우리에겐 늘 경탄의 대상이었다. 정치 보복 없는 순조로운 정권 교체와 당파 갈등을 치유하는 정치적 노력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이 토양은 링컨의 화해 정신일 터다. 남북 전쟁을 승리로 이끌던 링컨은 남부에 대한 철저한 처벌과 숙청을 원했던 강경파와 달리 남부에 대한 포용을 역설했다. 종전 직후 비록 암살됐으나 그의 정신은 국가 재건과 통합의 밑거름이 됐다. 제럴드 포드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당한 닉슨을 사면한 대가로 다음 대선에서 떨어지는 곤욕을 치렀으나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이 전통을 지켰던 셈이다. 버락 오바마도 부시 정부의 물고문 등에 대한 처벌 요구를 거부했고 심지어 트럼프도 선거 운동 때는 힐러리 클리턴을 감옥에 보내겠다고 공세를 폈으나 막상 당선 후에는 클린턴의 이메일 사건을 수사하지 않도록 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이 전통 아래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법무부의 독립적 판단에 맡기겠다는 게 공식 입장이지만 그는 지난해 선거 운동 때 “전직 대통령 기소는 민주주의에 좋지 않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당선 후에도 트럼프 수사를 원치 않는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취임사의 키워드도 통합과 치유였다.

하지만 미국 내 진보 진영에선 “진정한 치유와 통합은 정의 실현을 통해 이뤄진다”며 트럼프 기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 역시 법 위에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줘야 법치주의가 바로 서고 차후에도 트럼프 같은 대통령이 나오지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트럼프를 처벌하지 않으면 그가 계속 지지자를 선동해 통합은커녕 갈등이 계속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폴 머스그레이브 매사추세츠 애머스트대 교수가 지난해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글이다. 그는 두 전직 대통령을 처벌한 한국 사례를 거론하며 트럼프 기소가 반부패 노력과 자유 민주주의를 고양시키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우리에게 부러움의 대상으로 거론된 ‘전직 대통령 불기소 전통’을 두고선 ‘오랜 국가적 악몽’이라고 표현하며 이를 끝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미국이 실제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지켜봐야 한다. 말하고 싶은 것은 갈등 치유와 정의 실현 사이에서 정답은 없다는 점이다. 보수 진영이 과거 청산에 반대할 때마다 끌고 오는 미국의 전통도 지금 논란에 휩싸여 위태롭다. 물론 진보 진영이 과거 청산을 밀어붙일 때 치켜세우는 프랑스의 나치 청산 사례 역시 인민재판식 처형과 여성 삭발 등 성차별적•반인권적 행태로 적잖은 후유증을 겪었다. 중요한 것은 시대적 요구에 우리가 얼마나 균형감 있게 대응하느냐다. 두 전직 대통령을 이미 처벌한 우리 사회가 더 성숙한 단계에서 사면 논의를 한다면 민주주의의 새로운 모범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송용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