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에서 가결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언제 상원으로 보내느냐를 두고 민주당이 고민에 빠졌다. 이르면 22일(현지시간) 송부할 거란 관측이 나온 가운데 공화당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준비 시간을 줘야 한다”며 일정 지연을 요청한 까닭이다. 여기에 새 행정부 출범과 동시에 ‘탄핵 정국’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는 점도 부담으로 다가오면서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미 CNN방송은 21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 민주당 하원의원들이 22일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안을 상원에 넘기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탄핵안을 며칠 내로 상원에 송부할 것으로 예상되며, 그 시점이 22일이 될 수 있다고 의원과 보좌진을 인용해 전했다.
하원이 탄핵안을 보내면 상원은 구체적인 절차와 기간 등을 정한 뒤 연방대법원장이 주심을 맡는 심판을 진행하게 된다. 하원의장은 탄핵안 송부 시점을 정할 수 있다. 펠로시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곧 이뤄질 것”이라고만 했다.
그러나 이날 공화당 상원 1인자인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가 탄핵안 송부를 28일까지 유보해달라고 역제안하면서 정치적 이해득실을 둘러싼 양당의 눈치싸움은 한층 더 치열해졌다. 상원 재판 준비 시간이 필요한데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도 적어도 2주 정도 대비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게 매코널의 주장이다. 요청대로라면 상원 탄핵심판 절차는 내달 중순부터 시작된다.
공은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일단 민주당의 탄핵 의지는 확고하다. 펠로시 의장은 “탄핵 추진이 바이든 대통령이 주창하는 통합에 저해된다”는 공화당 측 주장에 “대통령이 내란을 선동했다. 다 잊고 새 출발 하자고 하는 건 단합이라고 보지 않는다”라고 잘라 말했다. 상원 주도권도 다수당 지위를 회복한 민주당에 있다.
그러나 사실 탄핵심판 연기가 민주당에도 그리 나쁜 제안은 아니다. 일단 남은 기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위법행위를 입증하는 법적 논리를 보다 탄탄하게 갖출 수 있다. 여기에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탄핵 소용돌이에 빠지는 위험을 피하는 효과도 얻게 된다. 심판 일정이 확정되면 모든 이슈가 탄핵으로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 조 바이든 대통령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핵심 국정과제가 묻힐 가능성이 높다. 새 정부 초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처럼 시급한 현안 처리를 제 때 하지 못하고 국론 분열만 깊어지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CNN은 “민주당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바이든 내각 지명자에 대한 상원 인준이 늦어질 것도 우려한다”고 전했다. 실제 각료 인준이 미뤄지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사실상 ‘나 홀로 취임’을 했다. 이날까지 장관급 각료 가운데 상원 검증을 마친 인사는 애브릴 헤인스 국가정보국(DNI) 국장 단 한 명뿐이다. 나머지 22개 부처는 당분간 대행 체제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매코널 원내대표의 제안에 척 슈머 민주당 원내대표는 “검토해 보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한편 트럼프 전 대통령 측도 본격적인 탄핵 심판 대비에 나섰다. 일간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최근 변호사 부치 바워즈를 탄핵심판 변호인으로 선임했다고 전했다. 최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추천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