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하는 금융위, 공매도 재개 말 바꾸고 혼란은 '남탓'

입력
2021.01.2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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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매도 종료'에서 '확정된 바 없다'로 입장 바꿔
'한 말 안 한척' 이례적...유감 표한 기재부 등과 대비
정책적 판단 대신 정치권 눈치 보기에 무책임 '비판'

▶금융위원회 (11일 출입 기자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 "코로나19로 인한 한시적 공매도 금지조치는 3월 15일로 종료될 예정입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18일 기자회견) = "(공매도 재개와 관련해) 최종 결정이 나올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단정적 보도는 시장에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금융위원회가 일주일 만에 공매도 재개 방침과 관련한 입장을 "종료 예정"에서 "결정된 바 없다"로 뒤바꿨다. 정책 추진 의사를 비교적 선명히 밝혀놓고도, 정치권과 여론의 반발이 거세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했던 말을 슬그머니 거둬들인 것이다.

정책 결정에 대해 신중치 못했다는 비판은 차치하더라도, 입장 변경으로 초래된 시장 혼선 원인을 언론 등 외부로 돌리고 있어, 정부 기관으로서 무책임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정책 추진 의사 밝혀놓고 "그런적 없다" 발뺌

정부가 정책 파트너인 여당의 입장을 반영해 정책 방향을 수정할 수는 있겠지만, 금융위원회처럼 했던 말을 안 한 것처럼 입장을 슬그머니 바꾸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주식 양도세 부과 기준인 대주주 요건을 두고 정치권과 견해차가 커지자 홍남기 경제 부총리가 사의를 표명하기도 했다. 기재부는 여당의 압박으로 주식 양도세 부과 대상을 축소하기로 하면서도 정부 정책 방향 수정에 유감을 표명했다.

하지만 금융위는 공매도 재개 의사를 선명히 밝혀놓고도 '그런적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금융위 문자 메시지로 공매도 재개 방침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후 정치권과 여론의 반발이 거세지자 금융위는 "공매도 재개는 9명으로 구성된 금융위 회의에서 결정할 문제"라며 '확정된 바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3월 15일로 종료될 예정'이라는 문구가 혼선을 초래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기존의 일정을 단순히 안내한 것"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18일 기자회견을 통해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금리 관련 사안에 대해 한국은행 임직원이 단정적으로 발언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공매도 재개 방침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금융위와 은 위원장의 해명은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은 임직원이 금리 결정 사안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처럼, 한은이 "금리가 다음 달 15일 오를 예정"이라는 문자를 기자들에게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한은이 이런 문자를 외부로 보내놓고 "단순한 일정을 안내했다"고 해명하는 것 또한 상상하기 어렵다.



정치권 눈치만...'정부 부처가 정치하냐' 비판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결정하면서 정부가 책임감 없이 정치권에 지나치게 휘둘린다는 지적도 많다. 정부는 정책 시행에 따른 효과와 부작용 등을 살피는 데 집중해야 하는데, 정치권 반응에 정책 시행 여부가 결정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금융위가 공매도 재개 관련 입장을 번복하게 된 데에도 4월 재보궐 선거를 앞둔 여권의 압박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권 정치인들은 금융위가 공매도 재개 원칙을 고수하자, "주식시장을 지켜낸 것은 동학개미”(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공매도를 재개하는 것은 금융당국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박용진 의원) 등 비판을 쏟아냈다. 정세균 국무총리까지도 공매도에 대해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제도라고 생각한다”며 부정적 의견을 내놨다.

일각에서는 정부 부처인 금융위원회가 정책적 판단 보다는 정무적 판단에 치우친 사실상의 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내놓고 있다. 은성수 위원장은 '여당과 공매도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냐는 질문에는 "그런 것은 없다. 2월에 국회가 열리면 의원들께서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저희로서는 협의하거나 의견을 내는 게 아니라 주로 듣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권이 소리 지르면 금융당국이 꼬리를 내리는 모습은 정부가 스스로 신뢰 저하를 자초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연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공매도의 순기능은 외면한 채 정치적으로 유리한 쪽만 선택하게 되면 향후 폭탄 돌리기의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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