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민주당 무공천 번복에 "당헌은 고정불변 아냐"

입력
2021.01.1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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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천 당헌'은 2015년 당 대표 시절 만들어
"국민과 약속 뒤집은 것 용인" 비판 불가피
박원순 피해자에게는 "안타깝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더불어민주당이 4ㆍ7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로 한 데 대해 "당헌은 고정불변이 아니다"라며 사실상 별 문제 없다는 시각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이 ‘당 소속 선출직의 중대 잘못으로 재보궐 선거를 치를 시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을 깼음에도 별다른 유감 표명 없이 승인한 셈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신년기자회견에서 “우리 헌법이 고정불변이 아니고 국민의 뜻에 의해서 언제든지 개정될 수 있듯이 당헌도 고정불변일 수는 없다”며 “민주당 당원들이 당헌을 개정하고 서울ㆍ부산시장 후보를 내겠다고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민주당과 민주당 당원들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4ㆍ7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민주당 소속이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문 비위로 인해 실시된다. 두 보궐선거에 쓰이는 세금만 838억원에 달한다. 민주당 귀책으로 치러지는 선거라 당헌에 따라 후보를 낼 수 없었지만, 민주당은 지난해 10월 전당원 투표를 통해 '무공천' 당헌을 폐기했다.

2015년 무공천 당헌을 만든 당대표가 바로 문 대통령이다. '공당으로서 공천에 책임을 지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번 신년기자회견에서는 “제가 대표 시절 만들어진 당헌이라고 신성시될 수 없다” “당헌은 종이 문서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원들의 전체 의사가 당헌”이라고 했다. 민주당이 당헌을 뒤집은 데 대해 유감이라거나 아쉽다는 표현은 하지 않았다. '국민과의 약속을 뒤집은 것을 용인했다'는 비판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이 공천에 힘을 실어줌에 따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서울시장 출마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민주당에서는 박 장관의 서울시장 출마를 기정사실로 여기지만, 내각 임명권자인 문 대통령의 의중이 최대 걸림돌이었다. ‘공천에 문제 없다’는 문 대통령의 입장 표명으로 박 장관의 부담은 확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다만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피해 사실에 대해 대단히 안타깝고, 그 이후 여러 논란 과정에서 2차 피해가 주장되는 상황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으로는 박 전 시장이 왜 그런 행동을 했으며,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도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관련 질문을 받은 뒤 긴 한숨을 내쉬었고, 네 차례 "안타깝다"고 표현해 착잡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입장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지용 기자
장채원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