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53)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정농단 뇌물공여ㆍ횡령’ 사건과 관련해 18일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정구속도 피하지 못했다. 이 부회장으로선 지난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형 판결과 함께 석방된 지 약 3년 만에 또다시 수감생활을 하게 됐다. 이번 파기환송심 재판에선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에 대한 평가가 이 부회장 양형의 핵심 변수였는데, “준법위가 실효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이상, 양형(의 감경사유)에 반영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게 재판부의 결론이었던 셈이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 정준영)는 이날 뇌물공여 및 횡령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한 뒤, 그를 법정구속 했다. 공범으로 함께 기소된 최지성(70) 전 삼성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부회장), 장충기(67) 전 미전실 차장(사장)도 동일한 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됐다. 다만 박상진(68) 전 삼성전자 사장, 황성수(59) 전 삼성전자 전무에겐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이 각각 선고됐다.
대법원 파기환송 후 열린 이번 재판은 1년 3개월 동안 ‘양형심리’에 집중됐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019년 8월, 항소심에서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ㆍ횡령 액수를 36억원 정도만 인정한 것과 달리, △이 부회장이 최서원(65ㆍ개명 전 최순실)씨에 제공한 말 세 마리(약 34억원 상당)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원 등을 ‘뇌물이 맞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ㆍ횡령액도 86억8,000여만으로 대폭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 부회장 측은 유무죄 다툼보다는 ‘집행유예’로 감형을 받는 데 전력을 쏟았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은 횡령액이 50억원 이상일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작량감경’(참작 사유가 있을 때 법관 재량에 따른 형의 감경)이 없다면 실형이 불가피했던 탓이다. 집행유예는 징역 3년 이하의 형에 대해서만 가능하다.
양형심리의 핵심 쟁점은 ‘준법위의 실효성’이었다. 준법위는 2019년 12월 3차 공판 때 재판부가 “향후 정치권력자의 뇌물 요구를 거절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답변을 제출하라”며 숙제를 내자, 이 부회장 측이 “새로 설치하겠다”며 내놓은 대답이다. 이후 재판부는 전문심리위원 3명을 선정, 준법위가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 집중적으로 검증했다. 이 과정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특검)이 준법위를 양형에 반영하려는 데 반발, 재판부 기피 신청을 내 10개월간 재판이 정지되는 우여곡절도 빚어졌다. 재개 이후에도 재판부와 특검은 실효성 검증 방법을 두고 사사건건 충돌했다.
그리고 이날, 재판부는 “준법위를 양형조건으로 참작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는 “기업 총수의 형사재판에서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적 운영은 양형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으나, 삼성 준법위는 실효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특히 “앞으로 발생 가능한 새로운 유형의 위험에 대한 예방 및 감시 활동에까지 이르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지금의 삼성 준법위 체계로는 정치권력이 바뀔 때마다 반복돼 왔던 삼성 최고 경영진의 뇌물공여ㆍ횡령사건을 단절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의미다.
준법위의 또 다른 한계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삼성그룹 내 콘트롤타워 역할 조직에 대한 준법 감시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지 않은 점 △준법위와 협약을 체결한 7개 계열사 이외의 회사들에 대해선 감시 체계가 확립되지 못했던 점 등을 거론했다. 그러면서도 “이 부회장은 최후 진술에서 준법경영의지를 진정성 있게 보여줬다. 시간이 흐른 뒤 더 큰 도약을 위한 준법윤리경영의 출발점으로서, ‘대한민국 기업 역사의 큰 이정표’라는 평가를 받기를 바란다”고 긍정적 의의를 인정해 줬다.
파기환송심 초반, 이 부회장 측과 특검이 다퉜던 뇌물의 성격은 ‘적극적 뇌물’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요구에 편승해 적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했고, 묵시적이긴 하나 승계 작업을 돕기 위해 대통령 권한을 사용해 달라는 취지의 부정청탁도 했다”고 밝혔다. ‘모든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이 부회장에겐 실형 선고 및 법정구속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던 이유다.
다만 형량은 뇌물공여죄 법정 최대형인 징역 5년의 절반에 그쳤다. 재판부는 △횡령은 박 전 대통령이 삼성전자 명의의 후원을 요구했기 때문인 점 △횡령 피해액 전부가 회복된 사실 △현실적으로 대통령의 뇌물 요구를 거절하는 건 어려운 점 등을 참작할 때 “실형을 선고하더라도 양형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건 다소 부당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검은 “주요 피고인들의 실형 선고는 대법원 판결 취지를 감안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공식 입장을 내고 이번 판결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변호인은 “이 사건 본질은 전직 대통령의 직권남용으로 기업이 자유 재산권을 침해당한 것”이라며 유감을 표한 뒤, “판결문 검토 후 구체적 입장문을 따로 내겠다”고 밝혔다. 형사재판은 선고 후 일주일 내 상소하지 않으면 형이 그대로 확정되는데, 이 부회장은 이미 1년가량 수감생활을 했으므로 이번 판결이 확정될 경우 앞으로 1년 6개월 더 복역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