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외식업중앙회 연루 수십억 탈세 포착... 가짜 계산서 판매 의혹

입력
2021.01.2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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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회 관계자, 가짜 계산서 알선 뒷돈 의혹
중앙회 "일부 직원 개인적 일탈일 뿐" 해명


외식업체들이 허위 계산서를 통해 탈세를 하는 과정에, 외식사업자 단체인 한국외식업중앙회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포착돼 국세청이 조사에 착수했다. 국세청은 탈세가 확인된 외식업체를 상대로 탈루세액 추징에 나서는 한편, 탈세액의 1~4% 가량을 뒷돈으로 챙긴 의혹을 받는 중앙회 관계자들에 대한 형사 고발을 검토하고 있다.

19일 한국일보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국세청은 최근 외식업중앙회 소속 회원이 서울 중구·마포구 등에서 운영하는 외식업체 14곳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국세청은 세무조사에 이어 탈루한 부가가치세를 추징하고, 탈세 규모가 큰 업체를 형사 고발했다.

농수산품 매입시 공제하는 특혜 악용

이 업체들은 2015년부터 최근까지 중앙회 직원들로부터 가짜 계산서를 구입한 뒤 국세청에 내야 할 세금을 줄인 의혹을 받고 있다. 가짜 계산서는 경기 이천시와 충남 공주시 등에 소재한 농산물 도매업체들이 발급한 것인데, 실제 사지 않은 농산물을 구매한 것처럼 꾸몄다. 음식점이 면세 농수축산물을 매입하면 매입 금액의 일정 비율을 부가가치세 매입세액에서 공제해 주는 '의제매입세액공제' 혜택을 받는데, 이들은 이 제도를 악용한 의혹을 받는다. 매출 자체를 줄이는 방식이어서 탈세에 따른 이익이 다른 수법에 비해 크다.

중앙회 직원들이 이런 방식으로 알선한 가짜 계산서 규모는 2015년부터 3년간만 최소 약 200억원, 탈세액은 수십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마포구에서 음식점을 하는 이모씨는 "가짜 계산서를 사지 않으려 했는데, 협회에서 '직접 파는 거라 이상이 없다'면서 구매를 종용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씨는 "(중앙회가) 수수료를 현찰로 달래서, 계산서 금액의 4%를 줬는데 세무조사까지 받게 돼 죽을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중구에서 음식점을 하는 박모씨는 "2015년부터 최근까지 세금 신고를 모두 다시하고 있다"며 "(중앙회 직원들이) 달라는대로 돈을 줬는데, 가산세에 벌금까지 내야 할 판"이라며 "계산서 매입액이 최대 3억원인 경우도 있는 등 소상공인 피해가 막심해 중앙회 관계자에 대한 고발을 검토 중"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음식점들 "중앙회 하자는대로 했는데.."

탈세로 적발된 회원(음식점)들은 중앙회가 알선한 가짜 계산서 규모가 지금까지 드러난 것의 10배가 넘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한정식집을 운영하는 A씨는 "중앙회 지회장이 운영하는 음식점까지 국세청에 적발됐으니 상황을 알 만 하지 않느냐"며 "강남 지역 업체까지 포함하면 서울에서만 150개 업체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전했다.

회원 반발이 이어지자 중앙회가 사건을 무마하려했다는 증언도 이어지고 있다. 중앙회 한 간부는 "수년 전 한 지회장이 (가짜 계산서 판매로) 뒷돈을 챙긴 문제가 불거졌지만 함구령이 내려졌다"며 "중앙회 차원의 조사는커녕 해당 직원에 대한 징계도 없었고, 오히려 회원들의 문제 제기를 무마하느라 바빴다"고 증언했다.

조직적인 가짜 계산서 판매 의혹에 대해 중앙회 측은 "일부 직원의 개인 일탈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중앙회 관계자는 "협회 차원에서는 전문 변호사와 세무사로부터 정확한 세무 관련 지침을 만들어 회원에게 배포하고 있다"며 "알선 수수료를 챙긴 개인에 대한 얘기는 들어본 바 없다"고 주장했다.

국세청은 지난해 12월 서울 지역 일부 식당들이 가짜 계산서를 이용해 의제매입세액공제 방식으로 탈세를 한 추가 제보를 접수하고, 앞선 탈세 사건과 병합해 조사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탈세 규모가 큰만큼 가짜 계산서 알선 등에 깊숙이 개입한 중앙회 직원들에 대한 형사 고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 관계자는 "탈세와 관련한 구체적 조사 내용은 확인해 주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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