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경제학은 구체적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입력
2021.01.15 17:00
21면
제61회 한국출판문화상 북콘서트  
번역 부문 수상자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김승진 번역가

“연간 1만3,000달러의 보편 기본소득이 조건 없이 주어지면 당신은 일을 혹은 구직을 그만두시겠습니까?” 보편 기본소득에 관한 생각을 미국인들에게 물었더니, 응답자의 87%가 “아니다”라고 했다. 사람들이 일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돈이 필요해서만이 아니라, 목적의식, 소속감, 존엄성을 느끼게 해주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기본소득이 근로 의욕을 꺾어 게으름뱅이들만 양산할 것이란 강한 믿음에 사로잡혀 있다. 주어를 바꿔 다시 물었다. “연간 1만3,000달러의 보편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사람들은’ 일을 혹은 구직을 그만둘 것 같습니까?” 응답자 다수는 “그럴 것이다”라고 답했다. 실증적 근거는 없다. 편견, 이념에 치우쳐 단정할 뿐이다.

“’수많은 정책이 쏟아지는데도 왜 세상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긴커녕 더 악화될까.’ 책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지난 8일 서울 내수동 교보문고 아크홀. 제61회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 수상자인 김승진 번역가는 물음표가 가득한 경제학 논문 한편을 띄어놓고 강연을 시작했다.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원제 Good Economics For Hard Times)은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공동수상 한 부부 경제학자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가 함께 쓴 책이다. 개도국의 빈곤 퇴치 문제를 주로 연구해온 두 사람은 경제 정책이 효과를 내지 못하는 건, 현실의 복잡성에 대한 ‘팩트체크’가 부족했기 때문이라 진단한다. 김 번역가는 “구체적으로 질문하지 않았기에, 구체적인 답을 얻을 수 없었던 것”이라고 부연했다.

“질문의 수준을 너무 높여 버리면, 하나마나 한 이야기들 밖에 나올 수가 없습니다.” 가령 저개발국 아동의 교육을 확대하는 정책을 폈는데 효과가 없다. 왜 그럴까. 따져볼 변수는 많다. 아이들의 영양상태가 안 좋아서 수업에 집중을 못한다거나, 학교 가는 길이 너무 멀고 위험해 등교를 포기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구체적 원인 분석 없이, 효과가 없다는 결과 하나만으로 정책은 곧잘 폐기되곤 한다.

현실에 대한 무지보다 더 큰 걸림돌은, '그럴 것이다'라는 막연한 관성에 사로잡힌 고정관념이다. 저자들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었던 경제학 문법들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검증’한다. “경제학자들은 복지 수급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돈이라고 믿죠. 하지만 자신의 존엄이 훼손당한다고 느껴진다면, 지원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요. 금전적 시그널이 만능이 아니란 거죠.”

강연 전 미리 받은 질문에서 독자들은 저자들이 기본소득에 찬성하는지 여부를 많이 궁금해했다. “사실 그 질문 자체도 너무 큰 질문이에요. 기본소득이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디자인해서, 누구에게, 어떻게 지급할 것인지가 중요하죠. 핵심은 기본소득은 시장 교란이 발생했을 때 피해를 보고, 탈락한 사람들을 구제해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겁니다."

'현실에 바탕을 두고 정책을 검증할 것', '구체적으로 질문하고 답을 구할 것', '덜 이데올로기적으로 사고할 것'. 힘든 시대를 이겨내기 위한 좋은 경제학의 세 가지 강조점이다.

강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