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이만희(89) 총회장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시설 현황과 교인 명단 제출을 요구한 지자체와 방역당국의 활동이 방역조사를 위한 사전 준비 단계에 불과하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다만 신천지 측 헌금 등을 개인용도로 사용한 혐의(횡령 등)에 대해선 유죄가 인정됐다.
수원지법 형사11부(김미경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감염병예방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총회장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징혁 5년을 구형한 바 있다.
재판부는 이날 이 총회장의 혐의에 대한 판결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이 총회장은 특경법상 횡령과 업무상횡령 위계공무집행방해, 업무방해, 건조물침입, 감염병예방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방역대책본부가 신천지 측에 요청한 것은 역학조사 자체 행위라기보다 역학조사를 위한 준비단계”라며 “검사 측은 역학조사 자료수집 역시 역학조사에 해당한다고 하지만 역학조사는 개인 사생활 기본권 제한과 형사적 처벌전제가 되기 때문에 죄형법주의 원칙상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그 범위를 확장해서 해석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감염병예방법에 의한 역학조사는 ‘감염병환자 발생 규모, 감염원 추적, 이상 반응 원인 규명 등에 대한 활동으로, 그 방법으로는 환자의 인적사항, 발병일과 장소, 감염원인 등과 관련된 사항’으로 규정하고 있어 역학조사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어 “결론적으로 시설 현황과 교인명단 제출 요구가 역학조사에 해당해야지만 일부를 누락해 제출한 자료가 역학조사 방해 행위가 돼야 한다”며 “하지만 제출한 것은 놔두고 누락한 것만을 문제 삼는 것도 문제지만 자료 제출 요청 자체가 역학조사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감염병예방법 위반은 무죄로 판단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위계공무집행방해도 같은 논리로 해석해 무제 판결을 내렸다.
당시 법정에 출석한 중수본 관계자들 증언도 무죄 판결에 영향을 줬다. 이들은 “모든 시설을 제출하라고 명확하게 말한 바 없고, 제출해야 할 시설 범위가 어디어디까지인지 볼 구체적 기준 말한 적 없다”고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지사가 폐쇄조치한 시설에 출입한 것과 관련해서도 역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경기지사는 당시 신천지 측 박물관 부지에 대해 시설 폐쇄조치를 내렸는데 문제는 그 폐쇄조치가 적법했느냐는 점”이라며 “감염병예방법(47조)에는 감염병 환자가 있는 장소나 병원체, 오염된 것으로 인정되는 장소인데 박물관 부지는 여기에 해당한다는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폐쇄조치의 적법성을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피고인이 해당 시설을 방문한 것을 놓고 조치 위반 행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신천지 자금 등을 개인 용도로 사용한 것도 모자라 반성의 기미가 없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평화의궁전 행사에 사용할 비용 등을 개인 통장에 입금 후 사용한 것과 관련, ‘통장은 전 부인이 관리했고, 사용한 돈은 신도들의 개인 후원금’이라고 부인했다”며 “하지만 전 부인 김모씨의 증언, 피고인이 통장을 직접 개설하고 마지막 계좌 사용도 피고인 본인이 직접 은행에서 처리한 했다는 점이 인정돼 유죄”라고 설명했다.
신천지 규약 및 규정에는 신천지 내에서는 개인에 대한 찬조금이 금지돼 있고, 교인들이 총회장 개인을 위해 헌금하거나 후원금을 내지 않는다는 관계자들의 진술도 증거로 인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가평군에 있는 평화의 궁전도 신천지 측의 시설이 아닌 이만희 총회장 부부의 개인 용도로 사용해 왔다며 신천지 측 자금을 횡령했다고 봤다. 이만희 총회장은 신천지 연수원을 짓겠다며 신천지 측 예산 52억 원을 투입시켰다.
하지만 검찰 수사 과정에서 평화의 궁전은 이 총회장과 전 부인 김모씨 명의로 2분의1씩 나눠가진 것이 확인됐다. 더욱이 평화의 궁전에는 침실과 옷장 등 개인적 공간을 마련해 두고, 오랜 기간 전입 신고해 거주해 왔다.
평화의 궁전에서 신천지 관련 행사는 1년에 10회, 월 1회도 열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총회장 측은 “신천지 연수원으로 사용했고, 부지 매수 대금은 건물 완공 후 대물로 변제하기로 했다”며 “실제 대물 변제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영득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해 왔다.
법원은 이 총회장과 함께 기소된 다른 피고인 3명에 대해서는 각각 벌금 200만원, 100만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횡령 금액이 50억 원을 훨씬 초과하는 아주 큰 금액인데 이는 교인들이 어렵게 헌금이나 후원금 등으로 지급한 돈으로 보인다”며 “그런데 피고인 평소에는 본인은 물론이고 신천지 재정 아주 투명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처럼 행세하면서 교인들의 정성과 믿음 저버리고 개인적 용도로 이 돈 사용했기 때문에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피고인은 이 사건 공판 과정에서 자신의 잘못을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지 않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어 “다만 피고인에게 집행유예 이상의 형사처벌 받은 전력이 없고, 피해액을 변제하거나 부동산 지분을 이전하는 등으로 금전적 피해가 거의 회복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 점이 유리한 양형 요소로 감안해서 양형 기준 내에서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받은 이 총회장은 재판이 끝난 뒤 휠체어를 타고 법정을 빠져나갔다.
이 총회장 변호인은 “감염병예방법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의 판단을 환영하나, 횡령 등 유죄 부분에 대해서는 유감”이라며 “항소를 통해 적극적으로 소명하고 다시한번 공정한 법의 심판을 받고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신천지 측도 자료를 통해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다는 말씀 드린다”고 했다.
이 총회장은 신천지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지난해 2월 신천지 간부들과 공모해 방역 당국에 신도 명단과 집회 장소를 축소해 보고한 혐의(감염병예방법 위반 및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로 기소됐다.
그는 신천지 연수원인 평화의 궁전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50억여원의 교회 자금을 가져다 쓰는 등 56억원을 횡령(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하고,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지방자치단체의 승인 없이 해당 지자체의 공공시설에서 종교행사를 연 혐의(업무방해)도 받는다.
이 총회장은 이런 혐의로 지난해 8월 구속기소됐다가 같은 해 11월 법원의 보석 허가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