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유럽연합(EU) 가입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터키가 EU를 떠난 영국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적극적인 구애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EU 다수 회원국은 에르도안 정부의 철권통치와 독불장군식 외교 행보를 문제 삼아 터키를 새 식구로 받아들이길 꺼려하는 눈치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수도 앙카라에서 열린 EU 회원국 대사들과의 회담에서 “터키는 EU와의 관계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을 준비가 됐다”며 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우리는 유럽과 함께 미래를 계획한다” “우리가 직면한 이중잣대와 부당함에도 불구하고 EU 가입이라는 최종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등 적극적인 가입 의사도 드러냈다.
터키가 EU에 가입할 경우 영국의 탈퇴로 발생한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게 에르도안 대통령의 주장이다. 그는 또 작년 내내 갈등을 빚어온 프랑스를 향해서도 “긴장을 완화하고 싶다”며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지난해 양국은 시리아ㆍ리비아 내전, 프랑스 내 이슬람 테러 대처방식 등을 두고 줄곧 부딪쳤다. 당시 에르도안 대통령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향해 “프랑스의 골칫덩이” “정신과 검사를 받아야 한다” 등 외교관례를 벗어난 독설을 퍼부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최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에게 ‘터키가 EU와의 관계에서 새로운 페이지를 넘기길 원한다’는 의사를 표했다”고 전했다.
EU 가입은 터키의 오랜 숙원이다. 터키는 EU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가 형성된 1987년부터 편입 의사를 밝혔다. 이후 사형제 폐지 등 EU가 제시한 가입협상 개시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2002년 의회에서 개혁법안을 통과시키면서 2004년 12월 EU 정회원 후보국 지위를 얻었다. 2005년 가입협상을 공식 시작했지만 키프로스 영토 분쟁과 국민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인 터키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는데 대한 EU 회원국의 반대 등이 잇따르면서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다.
특히 2016년에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쿠데타 진압 뒤 배후 세력에 대한 ‘피의 숙청’에 나서면서 EU 가입 가능성은 더욱 멀어졌다. 이후 EU 회원국 내에선 에르도안의 장기집권에 따른 인권침해, 법치 훼손을 우려하며 터키와의 가입 협상을 백지화 하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작년 3월에는 유럽 의회에서 터키의 EU 가입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결의안이 가결되며 사실상 모든 절차가 멈춰선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