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나오려나 보네."
국민의힘 소속 나경원 전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TV조선 '아내의 맛'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처음 알려졌을 때 대중은 먼저 의심했다. 지난 5일 방송에 나온 나 전 의원은 실제로 13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선언을 했고, 12일 전파를 탄 박 장관의 출마 역시 유력하다. 촬영 당시만 해도 출마 여부를 저울질했을 때라지만 결국 대중의 예상 그대로다.
사실상의 사전선거운동, 홍보 방송이었다는 지적이 불가피하다. 선거를 앞둔 한창 민감한 시기 빚어진 이번 잡음은 방송의 중립성에 대한 중요성도 다시 환기했다
물론 정치인의 예능 출연이 불법은 아니다. 또 예능에 정치인이 출연하는 사례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문제는 선거를 앞둔 미묘한 방송 시점이다. 또 유력 정치인과 관찰예능의 만남은 그 자체로 위험했다. 출연자의 인간적 매력을 어필하는 리얼리티 특성상 이미지 미화는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노출된 남편과 아들, 딸과 화목하게 보내는 일상의 모습은 그간 가족 때문에 정치적 논란이 됐던 문제들을 희석하는 효과를 보이기도 했다. ‘따뜻함’으로 포장된 방송에서 그 저의가 읽혀질 정도다. "모든 논란과 부정적 이미지를 정확하게 격파해 나가는 정교한 극영화적 짜임새를 가졌다(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평도 나왔다.
늘 대중의 관심을 갈구하는 존재가 정치인이라면 이미지 미화라는 부수적 효과까지 낸 이번 방송 출연은 언뜻 득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아내의 맛' 속 두 사람은 아내, 엄마라는 성역할에 스스로를 가뒀다. 철 지난 외모와 애교 타령, "남편은 불만 없으세요" "그럼 집에서 뭐하세요"라는 질문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다.
"집에서는 한 명의 아내일 뿐이라는 주장을 하고 싶었다면 심히 유감이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평범한 여성을 대표하면서 동시에 보통 이상의 능력을 가진 여성임을 입증해야 하는 여성 정치인의 딜레마에 스스로 빠져버린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