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옥죈 ‘선한 정책’들의 목록

입력
2021.01.11 18:00
26면
집권 후 경제 틀 바꾸는 정책ㆍ입법 잇달아
정의ㆍ공정 명분 불구 경제엔 막대한 부담
임기 말 경제활력 되살릴 전환적 정책 내야


산재사고 시 사업주와 경영자 처벌을 강화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어쨌든 국회를 통과했다. ‘어쨌든’이라는 건 국회 심의과정에서 여기저기 뜯어고치다 보니, 사회적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아쉬운 수준에 그쳤다는 얘기다. 5인 미만 사업장이 법 적용에서 제외되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 간 적용이 유예된 것만 해도 그렇다. 국내 전체 사업장의 99%가 50인 미만인 걸 감안하면 실제 법이 적용되는 사업장은 전체의 1%대에 불과해 시늉만 한 셈이 됐다.

그럼에도 경총은 “세계 최대의 가혹한 처벌을 부과하는 위헌적 법이 제정된 데 대해 그저 참담할 뿐”이라며 불만이다. 대한상의 등 여타 기업단체의 반응 역시 엇비슷하다. 엄동설한 거리에서 노숙투쟁을 벌여온 피해자 유족들로선 맹탕이 됐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법이 느슨해졌는데도 불만을 그치지 않는 재계의 행태가 고깝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확고한 사회적 공감에도 불구하고 업계가 노골적 불만을 그치지 않는 건 비단 법 제정 자체 때문만은 아니다. 그 동안 숱한 부작용을 쌓아온 정부의 ‘선한 정책’들에 대해 “해도 너무 한다”는 폭넓은 반감이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래도 대기업들은 두들겨 맞는 만큼, 수소경제나 차세대 통신, 반도체 개발 등에서 ‘한국형 뉴딜’ 차원의 정부 지원 혜택을 적잖이 누리고 있다. 반면 경제의 하부 구조인 대다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은 그 동안 정의와 공정을 명분으로 시행된 일련의 ‘선한 정책’ 부작용으로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사업하기도, 먹고 살기도 힘들어지는 지경으로 내몰려 왔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아무리 나쁜 결과로 끝난 일이라도 애초에는 선의로 시작된다”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에게도 그 동안 선의로 시작해 힘겨운 부작용을 낳은 정책이 한 둘이 아니다. 기억하는 한 박근혜 정부 말기 ‘김영란법’부터 그랬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시작된 법인 접대비 상한 축소와 법인카드 용도 제한 등에 이은 김영란법은 즉각 외식업과 백화점 등 소매업 매출을 위축시켰고, 지금도 부작용 때문에 명절 때마다 다급히 선물액 한도를 올리는 진풍경을 낳고 있다.

현 정부 들어 강행된 최저임금 과속 인상과 주52시간제의 선의도 확고했다. 어쨌든 최저임금 수준을 올려놓으면 취약근로자 임금도 결국 올라갈 것이고, 주52시간제는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해 근로자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업적이 될 거라고 봤다. 하지만 불황 속에 강행된 최저임금 인상은 소상공 및 자영업계에서 되레 일자리가 위축되는 결과를 낳았고, 주52시간제는 소기업 등의 근로소득을 감소시켜 안락한 휴식은커녕 근로자들이 투잡을 찾아 거리를 헤매야 하는 상황을 불렀다.

‘선한 정책’ 부작용은 경영인들에게도 닥쳐 “장사든 사업이든 못해 먹겠다”는 비명이 속출하고 있다. 당장 올 7월부터 주52시간제가 5인 이상 사업장 전체로 확대됨에 따라 불황에 시달려 온 적잖은 기업들이 골치를 앓고 있다. 이밖에 파업 시 대체근로 투입 등을 규제한 개정 노동법, 지난해 세법개정안에 포함된 기업 유보소득세, 올해부터 본격화할 각종 대기ㆍ환경 규제 등도 업계를 짓누르며 “여차하면 해외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푸념이 확산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신년사에서 “지난해 성장률은 OECD 국가 중 최고를 기록할 전망이고, 주가지수도 3,000시대를 열었다”며 경제회복을 자신했다. 하지만 심각한 산업 양극화와 소상공ㆍ자영업이 초토화한 상황의 성장률이나 주가지수는 신기루일 수밖에 없다. 이젠 단순 재정 지원을 넘어, 대다수 중소기업과 소상공ㆍ자영업에 생기를 불어넣을 전환적 정책이 절실하다.

장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