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차 노동당 대회 기간 승진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예상을 뒤엎고 정치국 고위급 명단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섣부른 판단을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인사는 일종의 ‘숨 고르기’일 뿐, 김 위원장의 직계 가족으로서 가지는 정치적 위상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란 관측이 대체적이다.
11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발표한 8차 당대회 6일 차 회의 내용에 따르면 김 부부장은 기존에 맡고 있던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빠졌고, 당 부장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그의 지위가 당 최고정책결정기관인 정치국의 위원 또는 상무위원으로 ‘수직 상승’할 것이란 예상이 많았는데 모두 빗나간 것이다. 앞서 국가정보원도 지난해 11월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여정이 위상에 걸맞는 직책을 맡을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김 부부장이 후보위원에서 탈락한 건 미진한 성과에 대한 문책 성격이 없지 않아 보인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당내 역할과 성과가 인사에 중요하게 반영됐는데, 김여정의 경우 대남ㆍ대미 업무를 맡아 수행했지만 양쪽 모두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며 “승진 명분이 약한 만큼 공개적으로 나서기보다 뒤에서 실질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 같다”고 했다.
국제사회에서 ‘김정은의 입’ 역할을 해온 김 부부장이 2인자, 후계자 등으로 거론되는 상황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지금까지 대외에서 악역을 맡아온 동생을 김 위원장이 관리하고 보호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직위를 갖지 않은 무임소로도 김정은에게 조언하는 역할은 계속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정은 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해 2인자로 부각된 김 부부장의 존재감을 줄인 것이란 분석도 있다.
김 부부장과 함께 김 위원장을 그림자 수행하며 최측근 ‘투톱’으로 꼽혀온 조용원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은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단숨에 올라섰다. 이례적으로 중앙군사위 위원에도 포함돼 김정은 시대 지도부 세대교체를 대표하는 인물로 급부상했다. 이번엔 희비가 갈렸지만 김 부부장 역시 언제든 고위 직책에 오를 수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이 결정하면 다시 정치국 후보위원이나 위원직에 선출될 수 있고, 김정은 공개활동을 상시적으로 보좌하고 있는 만큼 조용원처럼 공식적 지위가 갑자기 높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