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백화점 대표가 길고양이 밥 챙기는 까닭

입력
2021.01.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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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길고양이 30여마리 돌보는 
캣대디 김은수 한화갤러리아 대표 

반려견 ‘해피’와 산책하며 7년째 길고양이 돌봐 
“길고양이도 생명.. 지역 사회가 나서야”

“지난해(2019년) 근속 30주년 상품으로 받은 해외여행상품권을 결혼 30주년인 올해에도 못 썼어요. 그런데 상품권은 코로나19가 종식돼도 못 쓸 거 같습니다. 함께 사는 반려동물들과 지금 돌보고 있는 동네 길고양이들이 눈에 밟혀 긴 여행은 아예 못 가요. 아내도 같은 생각이고요. 그러고 보니 7년 전 반려생활을 시작한 뒤로는 1박 이상 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는 거 같습니다.”

김은수(58) 한화갤러리아 대표는 재계에서 손꼽히는 동물애호가다. 매일 반려견과 산책하는 건 기본이고, 동네 길고양이 30여마리의 밥을 챙겨주는 ‘캣대디’를 자처한다. 이런 모습은 경영 철학에도 투영된다. 한화갤러리아는 국내 최고 명품 유통업체임에도 인조모피 제품 판매에 힘쓴다. 또 유기동물 입양과 개식용 종식활동 등도 공개적으로 적극 지원한다. 국회의원 연구단체인 동물복지국회포럼이 지난달 개최한 ‘2020 대한민국 동물복지대상’에서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수상단체로 선정된 이유다.



사장님의 이중생활

김 대표가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낸 1960~1970년대. 그는 자신이 자란 서울 도심 한복판인 중구 필동 주택가에서조차 개를 마구 때려 도살하는 모습을 종종 봤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그나마 그가 어릴 적부터 10년 가까이 함께 지낸 반려견 ‘폴’과 ‘대니’는 가족들 사랑 속에 식용으로 전락하진 않았다. 하지만 가족이 1970년대말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하며 폴과 대니는 단독주택에 사는 지인에게로 갔다. 당시로선 개를 실내에서 키우지 않던 사회 분위기를 따른 평범한 가족의 행동이었다. 하지만 둘 다 갑작스러운 환경변화 때문인지 얼마 더 살지 못했다는 얘기를 김 대표는 들어야 했다. “초등학생 시절에 자고 있는 대니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놀자며 귀찮게 굴다가 코를 물린 흉터가 아직 있어요. 그래도 밉지가 않았습니다. 가족이었으니까요. 나중에야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한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밀려왔습니다. 이런 감정들 때문에 따로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나 봅니다.”

그러다 독일에서 근무하던 2013년 초 길고양이 ‘미셸’을 만났다. 추운 어느 날 집 앞에 고양이가 서성이는 것을 보고 밥을 챙겨 주며 김 대표는 물론 가족들도 미셸과 정이 들었다. 직접 키우지는 않았지만 개와는 달리 도도하면서도 은근 애교 있는 고양이만의 매력을 알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2014년 초 귀국 일정이 확정되면서, 미셸과 이별을 준비해야 했다. 영역동물인 고양이의 특성상 미셸이 10시간 넘게 비행 후 전혀 다른 세상에 적응해야 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김 대표는 고민 끝에 미셸을 오롯이 책임져 줄 사람을 찾기 위해 지역신문에 광고를 내 새 주인을 찾아줬다. 그리고 고양이의 매력을 알게 된 미셸에 감사하며 귀국하면 반려생활도 하기로 마음 먹었다.


“가족들이 저보다 좀 먼저 귀국했는데 제가 귀국하기도 전에 이미 유기묘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녀석이 지금 함께 지내는 ‘로빈’이죠. 그런데 로빈이 늦게 귀국한 제가 낯설게 느껴지는지 유독 제게만 살갑지 않더라고요. 로빈이 잠도 아내 옆에 딱 붙어 자는 바람에 엉겁결에 각방을 쓰기도 한다니까요.”

반려견 ‘해피’는 김 대표가 귀국 직후인 2014년 초 직접 유기견보호소를 통해 입양했다. 그는 해피 입양 후 지금까지 7년째 정말 불가피하지 않으면 산책을 거르지 않았다. 처음엔 녀석의 실외배변을 위한 산책이었지만, 지금은 산책 중 챙겨주는 동네 인근 길고양이들 밥 때문이라도 거를 수 없게 됐다. 그렇다고 캣대디의 길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김 대표가 해피 입양 직후부터 캣대디를 자처하며 단지 내 길고양이들을 챙겨주기 시작했을 때만해도 일부 주민들은 온갖 이유를 대며 못마땅해했다. 또 그런 그들에게 감정적으로 대처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다.

우선 주민들에게 단지 내 길고양이를 모두 잡아도 주변의 다른 길고양이들이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할 뿐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단지 내 길고양이들을 중성화 수술시키고, 더 이상 개체가 늘지 않게 관리했다. 그러자 삶의 안정을 찾은 길고양이들도 단지 주민들에게 애교를 부리며 다가왔다. 그렇게 단지 내 길고양이 급식에 눈 흘기던 동네 카페 아저씨와 미용실 아주머니는 이제 단지 내 길고양이 7마리의 팬이 됐다. “지금 단지 내 고양이들과 동네 인근 길고양이들까지 30마리 정도 돌봅니다. 추운 날 밥 챙겨주러 나갔다가 돌계단에서 미끄러져 손가락이 골절된 적도 있지만 역지사지로 생각해요. 그러면 자연스레 일어나게 됩니다.”



진정한 생명존중 사회를 꿈꾸며

김 대표는 지난 2019년 5월 이런 내용들을 모아 ‘이유 있는 생명’을 출간했다. ‘미셸’과 ‘해피’ 덕에 동물복지와 유기동물에 관심을 갖게 된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도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를 한 번 더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가 2017년 말 대표로 취임한 후 한화갤러리아가 그 이듬해부터 진행하는 파란(PARANㆍProtection of Animal Rights and Animal Needs) 프로젝트도 같은 맥락이다. PARAN프로젝트는 한화갤러리아의 상품, 서비스, 사회공헌 등에서 이뤄지는 생명존중 활동이다. 한화갤러리아는 이를 통해 동물보호센터 건립과 같은 동물보호단체들의 핵심사업을 후원하고,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유기동물보호소의 활동비와 물품을 지원한다.

PARAN프로젝트는 최근 인천 계양산 개발제한구역 내 불법 개농장에서 식용견으로 사육되다 구조된 200여마리 개들의 입양에 활동을 집중했다. 계양산 불법 개농장은 롯데 일가 소유의 개발제한구역 땅에 한 업자가 20년 넘게 불법으로 운영하다 2020년 6월 발각됐다. 이후 불법 개농장이 철거되고 개들이 자유를 찾으며 일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구조된 개들이 상당수 식용으로 길러진 대형견들이다 보니 입양이 더뎌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동물보호단체 등은 마땅히 갈 곳 없는 개들이 입양 때까지 임시로 그 자리에 머물게 해달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해당 지자체인 인천 계양구는 이 역시 불법인 만큼 이달 초 행정대집행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계양산 불법 개농장 사태가 세간에 알려지자, 김 대표는 구조된 개들 가운데 홍역 등 전염병으로 치료가 급한 12마리의 병원 치료를 개인적으로 지원했다. 이후 한화갤러리아가 PARAN프로젝트를 통해 12마리의 해외 입양 절차를 진행해 치료 중 안타깝게 숨진 새끼 5마리를 제외한 7마리가 미국 시애틀과 워싱턴 지역에서 제2의 견생을 살 수 있게 도왔다.

김 대표는 사람과 동물이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 후원과 일부 단체의 도움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말한다. 실제 1년에 200억원 정도인 국내 동물 복지 관련 예산이 지자체가 운영하는 보호소까지만 사용된다. 정부를 대신해 동물복지 사각지대에서 업무를 진행하는 동물보호단체나 사설 보호소는 개인 후원 등을 통해 활동이 유지되는 실정이다. 그가 사설단체나 사설 보호소 등에도 예산이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개선이나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지역 내 유기견이나 길고양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개인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 문제입니다. 개식용 종식이나 불법 번식장 문제는 입법활동을 통해 바꿔야 하는 국가적 문제이고요. 이제 우리 시민들의 의식과 제도 개선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태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