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에서 영월로 가는 길은 작은 강을 따라 달린다. 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이라고 생각하는 동강이다. 설악산을 가면 많은 사람들이 약수로 유명한 오색을 출발해 대청봉으로 오른다. 동강은 한 때 댐건설로 몸살을 앓았고, 오색은 케이블카 건설로 아직도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에는 경남의 하동군이 지리산에 산악열차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아 논쟁이 되고 있다. 그렇다. 환경이냐 개발이냐는 ‘지역정치’, ‘지방정치’에서 가장 논쟁이 되는 뜨거운 감자이다.
무려 30년 이상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가장 뜨거운 감자가 있다. 면적이 서울시의 3분의 2인 409㎢로 세계최대의 간척사업이자 길이가 33.9㎞인 세계최장의 방조제로 기네스북에 오른 새만금이다. 새만금은 노태우정권 시절인 1991년 첫 삽을 떴다. 15년 뒤인 2006년 방조제를 완공해 바다를 막았다. 내부 공사를 시작한 지 다시 15년이 흘렀지만, 30년이 지난 현재도 개발이나 환경을 놓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으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우리를 맞는 것은 세계잼버리대회 관련 선전판이다. 그 앞에 내려 바다 쪽으로 걸어가자, 전망대 밑으로 새만금의 남은 마지막 갯벌인 해창갯벌이 보인다. 다시 조금 달려가면, 환경단체들이 새만금갯벌 보호를 위해 장승 등을 설치한 곳이 나온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죽은 물이 살아날 것이다”라는 성경구절(에스겔 47:8)을 써 놓은 현수막과 장승 뒤로 2023년에 열릴 세계잼버리대회 부지를 만들기 위한 매립공사가 한참 진행 중이다. 이를 보고 있자, 개인적으로 2003년 문규현신부, 수경스님 등 4대 종단 성직자들이 주도했던 새만금에서 청와대까지의 삼보일배에 참여했던 생각이 나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그 바람에 고장이 나, 좋아하던 등산을 못 다니게 되는 등 지금도 고생을 하고 있는 무릎이 갑자기 욱신거렸다. 환경단체들은 갯벌을 매립하는 방식의 ‘반환경적인’ 잼버리대회부지 마련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는 청소년들이 자연과 교류하는 ‘잼버리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잼버리대회를 ‘환경 친화적’으로 추진하라고 세계스카우트연맹에 항의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왜 새만금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논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인가? 새만금은 한국정치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여준다. 빛은 낙후한 지방, 특히 그동안 발전에서 소외되어 온 호남을 발전시키겠다는 주민들과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의지이다. 이 점에서 새만금은 세종시, 지방혁신도시 등과 함께 ‘지역균형발전의 상징’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림자도 있다. 그림자는 표, 즉 호남의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정략적인 국가정책 추진과 예산을 확보해 사업을 추진하는 관련기관의 조직이기주의이다. 노태우가 처음 이를 추진한 것부터가 그러하다. 전두환과 함께 광주학살의 주범중의 하나인 노태우가 자신을 향한 호남의 적대적인 민심을 달래기 위해 꺼낸 카드가 바로 새만금이다. 주목할 것은 당시만 해도 그 목적이 식량 안보를 위한 농업용으로 개발하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김대중정부 시절 노무현 전대통령은 해양수산부장관으로 갯벌의 가치를 생각해 갯벌을 오히려 복원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며 세계적인 갯벌인 새만금의 간척사업을 유보하자고 건의했다. 그러나 막상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자 호남의 지지가 필요했고, 새만금개발을 지지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자 문규현 신부 등 4대 종단 성직자들의 삼보일배 등 반대운동이 심했지만, 내부 토지 중 72%를 농지로, 나머지 28%를 비농지로 개발하는 ‘새만금 내부토지개발 기본구상'을 발표했다. 시간이 흐르며 처음 새만금을 계획할 때와 달리 식량이 남아돌기 시작하자, 이명박 정부는 이 계획을 농지 30%, 비농지 70%로 다시 바꿨다. 사실상 농업 중심의 개발 계획을 폐기한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개발계획이 바뀌고 이에 따라 개발사업도 우왕좌왕하는 행태는 계속됐다. 박근혜 정부는 새로운 모델로 한·중 경협단지 조성에 방점을 뒀고, 토지를 산업용지, 국제협력용지, 관광·레저용지, 농생명 용지, 배후도시용지, 생태환경용지 등 6개 지구로 나눴다. 문재인 정부는 환황해권 경제중심의 개발을 주창했다가 이 같은 개발방향은 견지하면서도 새만금에 초대형 재생에너지단지를 조성한다는 방향으로 다시 한 번 방향을 틀었다. 이에 따라 한국수력원자력은 새만금 내수면 3.5 킬로평방미터에 1조 1,600억 원을 들여 대규모 수상태양광시설과 송전선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세워 지난해 말 입찰공고를 냈고 수변도시 착공식도 가졌다.
일부 학자들과 지역인사들은 환경에 대한 우려와 이에 기초한 새만금사업 반대는 발전을 갈망하는 현지 지방주민들의 열망을 무시한 중앙의 ‘등 뜨신 먹물지식인’들의 배부른 투정이라고 비판한다. 호남의 낙후와 지역주민들의 발전 열망을 생각할 때,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당초 계획은 농지를 확대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개간사업을 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후 쌀이 남아돌아 용도가 바뀌었다. 그렇다면 구태여 왜 간척사업을 통해 갯벌을 파괴해 만든 땅에 관련 시설들을 짓고 지역발전을 도모하느냐는 것이다. 새만금 발전프로그램을 새만금에서 가까운 인근지역에 적용해 개발을 하면 갯벌도 살리고 지역발전도 추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주민들의 목적이 간척사업으로 땅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발전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닌가?
지난 30년간 우여곡절을 계속해온 새만금개발에 최근 중요한 변수가 등장했다. 새만금개발의 핵심인 수질문제에 대한 정부의 연구용역 보고서가 나온 것이다. 이 보고서는 지난 20년 동안 새만금 유역 수질개선에 무려 4조원이상의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닷물이 제대로 흐르지 않았던 새만금호의 수질이 더 악화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 같은 사실에 기초해, 보고서는 새만금 방파제 안의 물을 농업·도시 용수로 사용할 수 있도록 수질을 높이려면 방파제를 열어 해수를 유통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긴 말이 필요 없다. 환경운동에 전념해온 최병성목사가 최근 드론을 띄워서 하늘에서 직접 찍어 한 인터넷매체에 올린 사진들이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새만금 방조제 안팎을 찍은 이 사진은 방조제 밖의 푸른 색 청정바다와 방조제 안의 ‘녹차 라떼’를 충격적으로 대비시켜 보여주고 있다. ‘녹차 라떼’는 4대강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좋은 교훈이 되는 곳이 안산 시화호다. 시화호역시 방조제 설치 후 수질이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해수를 유통시키자 수질이 회복됐다. 시화호처럼 해수유통을 하지 않는 한, 새만금의 물은 썩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물 썩는 내가 진동하는 ‘녹차 라떼 수변도시’를 만들 수야 없는 것 아닌가? 이 같은 보고서에도 불구하고, 전라북도와 사업주체측은 해수유통을 늦추려고 하고 있어, 갈등이 예상된다.
새만금 전시관에 들어가면 기이한 전시물이 제일 먼저 우리를 맞는다. 조선 중기의 예언서인 '정감록'이다. '정감록'이 한반도의 수도가 송악에서 한양, 계룡산, 가야산을 거쳐 서해의 고군산군도에 옮겨져 그곳이 1천년 도읍지가 된다고 예언했다는 것이다. 이 예언이 실제로 실현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계룡산이 가까운 “세종시까지 행정수도가 이전되었고, 다음에 고군산군도의 중심인 새만금이 국제적인 천년도읍지로 발전하게 되면 수도가 되지 않을까 예언하는 사람도 있다.” 새만금이 국제적인 천년도읍지가 된다? 예시력이 없는 나에게는, 황당한 이야기이다.
확실한 것은 이제 와서 새만금을 원점으로 돌릴 수는 없다는 점이다. 지역주민들의 발전염원과 이미 투입한 예산 등을 고려할 때, 새만금개발은 완성시켜야 한다. 문제는 얼마나 ‘친환경적’인 개발을 추구하느냐는 것이다. 방조제 건설로 이제는 어항으로서의 기능을 상당히 상실한 심포항에서 새만금 방조제까지 새만금을 동서로 관통하는 새만금동서도로가 지난 11월말 개통됐다. 이 도로를 달리며 나는 단군 이래 최대의 공사라는 새만금개발이 개발과 환경간의 균형 있는 절충을 통해 개발과 환경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기를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