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위해 발버둥" 끈끈이에 붙은 채 구조된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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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1 10:00


편집자주

유실∙유기동물에 주어진 보호기간은 10일. 이 기간에 보호자를 찾지 못하면 동물의 생사여탈권은 지방자치단체로 넘어간다. 구조부터 보호기간 종료까지 동물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또 보호기간이 끝난 이후는 어떻게 되는지 유기동물들의 생존기를 추적했다.


늦은 밤길을 가다 다친 고양이를 발견했다. 그냥 지나칠 것인가 도와줄 것인가. 도와준다면 어디에 신고를 해야 할까. 또 구조가 된다 해도 고양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다친 고양이를 지나치지 않고 도움을 요청한 시민, 새벽에 구조해 병원으로 이송한 사각지대 유기동물 구조단, 치료에 나선 유기동물 응급치료센터, 입양될 때까지 돌본 서울고양이입양카페, 마침내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가족. 이들 모두의 힘으로 새 삶의 기회를 얻은 새끼 길고양이의 사연이다.

D-10: 쥐 끈끈이에 붙은 채 구조된 작은 생명

지난해 11월 29일 새벽 2시 25분.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한 골목을 지나던 시민은 쥐 끈끈이에 붙은 검은색 새끼 고양이를 발견하고 강남구청 당직실에 신고했다. 구청은 바로 경기 양주시 상수리 유기동물보호센터인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동구협)에 구조를 요청했다. 지난해 3월 이전까지만 해도 야간이나 공휴일에는 다친 동물을 발견해도 곧바로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이런 구조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시는 동구협을 '사각지대 유기동물 구조단'으로 선정해 운영하고 있다.

출동한 구조대원은 다친 고양이를 동구협 보호소로 데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보호소로 가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에 발길을 멈췄다. 구조대원은 아직 어린 개체인 데다 치료만 하면 입양을 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서울시 '유기동물 응급치료센터'에 먼저 연락했다. 센터 내 자리가 있으면 치료받을 가능성이 생긴다. 또 치료에 들어가면 보호기간 종료와 관계없이 입양처를 기다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센터로부터 다행히 "데려와도 된다"는 연락을 받고, 숨만 붙어 있던 고양이를 서울 마포구 W동물메디컬센터로 이송했다. 이 동물병원은 지난해 3월부터 서울시 유기동물응급치료센터로 지정돼 운영 중이었다.

쥐를 잡기 위한 끈끈이지만 새끼 고양이들도 붙으면 떨어져 나오기 힘들다. 끈끈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을 쳤을까. 몸무게가 600g에 불과한 이 고양이는 저혈당, 저체온증 증상을 보였다. 응급치료센터 수의사는 전염병 검사를 간단히 시행한 후 공조기가 따로 돌아가는 격리장으로 고양이를 옮겼다. 수의사는 고양이의 소화기와 호흡기에 대한 검사를 마친 후 끈끈이를 떼어내기 위해 식용유로 목욕을 시킨 다음 떨어진 체온을 올리기 위해 주력했다.


구조이후: 생사의 갈림길에서 회복되기까지

다음날 오전 서울시 유기동물 응급치료 사업을 담당하는 김민수 수의사는 우선 고양이의 저체온증과 저혈당 치료에 집중했다. 고양이가 끈끈이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애쓴 노력은 수치로도 증명됐다. 김 수의사는 "젖산 수치가 높았는데 이는 무산소 운동을 많이 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그만큼 고양이가 빠져나오기 위해 근육을 많이 썼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날 진료기록에는 '채혈과정이 길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작고 힘 없는 고양이에게서 채혈하는 게 쉽지 않았을 터다. 설사 등의 증상이 있었지만 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돼 2층 고양이장으로 이동했다.


고양이는 모두의 돌봄 속에 병원 생활에 빠르게 적응해갔다. 식욕도 좋아져 몸무게도 600g에서 730g으로 늘었고, 병원 내 관계자들이 넣어준 작은 공을 가지고 놀 정도로 체력도 회복했다. 병원 생활 일주일이 되는 지난달 6일에는 염증수치도 정상범위로 돌아오고 백혈구도 상승하면서 수의사들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D데이: 새 삶을 시작하는 날

지난달 9일 치료를 마친 새끼 고양이가 병원을 떠나 서울 구로구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가 운영하는 서울고양이입양카페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서울고양이입양카페는 해당 사례처럼 구조돼 온 고양이를 포함해 동구협에서 공고기간이 끝나 안락사 위기에 처한 고양이들을 데려와 입양처를 찾아주고 있다.


2층 고양이실에서 만난 새끼 고양이는 곰팡이성 피부염 치료를 위해 '넥카라'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이 모습 마저 귀여웠다. 작은 몸으로 사람들의 손길에 맞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영락없는 ‘캣초딩’(활발하고 장난기 많은 아기 고양이를 일컫는 말)이었다.

지난 열흘 동안 고양이를 돌봐온 김민수 수의사는 건강 문제는 없는지 다시 살피고 송민수 서울시 동물보호과 주무관에게 인계했다. 송 주무관과 함께 서울고양이입양카페로 이동하는 동안 이동장 안 고양이는 쉴새 없이 울어댔다. 지난 열흘 간 익숙해졌던 공간을 떠나니 불안했던 모양이다. 30여분을 달려 입양카페에 도착한 후 고양이는 새로 들어온 고양이들이 모여 있는 방으로 이동했다. 보호 장안에 넣어 주니 고양이는 울음을 멈추고 사람들을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전염병 등 잠복기를 고려, 2주간 이곳에서 지내게 됐다. '네로'라는 이름도 얻었다.


D데이+3주후 : 평생 집사 만나다

치료를 마치고 입양카페에 들어오자 마자 깜찍한 외모 덕분인지 네로를 입양하겠다는 이가 있었다. 하지만 입양심사 결과 가게 홍보용으로 키우겠다는 의도여서 입양자에서 제외시켰다는 게 송 주무관의 설명이다.


고양이카페에서 고양이를 입양하고 싶다고 해서 그냥 데려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입양신청자가 총 18가지 설문에 답하면 카페 관계자들이 논의를 거쳐 최종 입양자를 선정하게 된다. 질문에는 유기고양이를 입양하려는 이유를 포함해 관리에 대한 의무 등이 상세히 포함되어 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새끼 고양이가 입양갈 확률은 낮아지게 된다. 관계자들의 애가 타던 중 지난달 30일 입양카페로 부터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네로' 를 입양하겠다는 이가 나타났다는 내용이었다. 네로를 입양한 양재준(34)씨는 "2년전 키우던 고양이가 세상을 떠난 후 미안한 마음이 들어 고양이를 키우지 못하고 있다가 유기동물 앱을 통해 네로 소식을 보게 됐다"며 "끈끈이를 떼던 사진이었는데 자꾸 그 모습이 떠올라 입양하게 됐다"고 전했다.


입양카페에서는 현재 10여마리의 고양이들이 새 반려인을 기다리고 있다. 송민수 주무관은 "고양이입양카페가 잘 알려지지 않아 입양률이 높지 않은 편"이라며 "고양이 입양을 고려한다면 건강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 고양이들이 많은 입양카페부터 찾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보호소 고양이 10마리 중 6마리 폐사

사실 네로와 달리 다쳐서 보호소에 들어온 고양이들은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다. 개와 달리 고양이의 경우 길에서 보인다고 해서 모두 구조하지 않는다. 농림축산식품부 고시인 '동물보호센터 운영 지침'에 따르면 보호센터에는 다치거나 어미로부터 분리되어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3개월령 이하의 새끼 고양이만 들어올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길에서 멀쩡히 잘 살고 있는 모든 고양이가 다 잡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프거나 다친 고양이들이 보호소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발생한다. 이곳에서 이들에게 주어진 기간은 짧으면 10일, 길면 20일. 교통사고를 당해 들어온 고양이에게 보호소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임성규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 사무국장은 "인력도 비용도 다친 고양이를 치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새끼 고양이 역시 수유와 보온, 배변 유도 등 돌봄이 필수인데 보호센터에서 그런 조치가 이뤄질 수 없고 결국 안락사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보호소에 들어온 고양이들의 폐사, 안락사율은 높을 수밖에 없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발표한 2019년 반려동물 보호·복지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기동물 13만5,791마리 가운데 고양이는 3만1,946마리. 이 가운데 51.3%는 자연사, 5.8%는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보호소에 들어온 10마리 중 6마리는 살아 나가지 못한다는 얘기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