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시간) 사상 초유의 국회 습격사건에 지구촌이 패닉에 빠졌다. 주인공이 민주주의를 꽃 피운 미국이라는 점에서 충격의 강도는 더 셌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민주주의가 무너졌다”는 절망이 줄을 이었다. 4년의 시간, 폭력과 비방으로 점철된 ‘트럼프식 가짜 뉴스’를 방치한 최종 성적표를 받아들었다는 자성도 나왔다.
미국의 동맹들부터 깜짝 놀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절친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날 사건 직후 트위터에 “수치스러운 장면”이라며 시위대의 행태를 맹비난했다. 이어 “전 세계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미국은 이제 평화롭고 질서 있는 정권 교체를 이뤄야 한다”며 사실상 트럼프와 갈라섰다. 유럽연합(EU)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호세프 보렐 외교ㆍ안보정책 고위대표도 “이것은 미국이 아니다. 미국 민주주의는 포위된 것 같다”고 일갈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분노한 폭도들이 가장 강력한 민주주의의 심장부를 덮치자 세계는 한때 상상할 수 없었던 광경들이 펼쳐지는 것을 실망과 불신의 눈으로 지켜봤다”고 진단했다.
또 터키, 베네수엘라 등 트럼프 행정부와 앙숙관계인 나라들조차 “미국에 있는 모든 당사자가 절제와 상식을 보여달라”는 성명을 발표할 정도로 놀라움은 컸다.
미국의 분열상이 권위주의 지도자들만 웃게 할 것이란 경고도 이어졌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의회 혼란은 미국의 신뢰를 깎아 내린 것과 동시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같은 권위적 지도자들의 이익이 됐다”고 평했다. 빠른 시간 안에 민주주의 회복을 자신할 수 없을 만큼 장기적 피해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친(親)트럼프 성향의 마이크 갤러거 하원의원도 “중국 공산당이 편히 앉아 웃고 있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실제 드미트리 폴리안스키 유엔주재 러시아 차석대사는 이날 “미국이 보여준 위선적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면서 체제 우월성을 간접적으로 내비치기도 했다.
비난의 화살은 대선 불복 주장을 거두지 않으며 시위대를 부추긴 트럼프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많은 의회 의원들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중대한 책임이 있다”고 했고,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트럼프가) 직접 연설을 통해 차기 대통령으로 조 바이든을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미국 전직 대통령들도 당적을 가리지 않고 트럼프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역사는 대선 결과를 두고 근거 없는 거짓말을 이어온 현직 대통령에게 선동된 오늘의 폭력을 기억할 것”이라며 “수년간의 뿌리깊은 분노로 구축된 그들의 환상은 현실에서 더욱 멀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역시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이것은 민주공화국이 아닌 ‘바나나 공화국’에서 논쟁할 때의 방식”이라며 미국이 중남미 민주주의 후진국이 된 격이라고 탄식했다.
이번 사건이 트럼프 정권에 대한 감시를 소홀히 한 필연적 결과라는 시각도 있다. 그의 재임 기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근거 없는 음모론과 거짓정보가 넘쳐났지만, 통제 체제가 작동되지 않아 극단주의와 증오만 부추겼다는 설명이다. 미 인권단체 반명예훼손연맹(ADL)의 조너선 그린블랫 회장은 AP통신에 “시위대의 행보는 음모론 집단인 ‘큐어넌’ 입장과 일치한다”며 “그들이 수년간 이 같은 광란을 유발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