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뿐인 청춘이 ‘복불복’이어서야

입력
2021.01.07 01:0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사회부 기자 12명이 한 달 이상 매달려 내놓은 기획 ‘주변부 세대 보고서’가 제4회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한국일보는 사회적 자원의 분배 과정에서 뒷전에 밀린 2030과 6070의 아픈 현실을 조명하며, 그들의 소외를 낳은 구조적 문제를 파헤치고자 했다.

두 세대는 △순전한 우연 △혹은 사회적 역학관계 △어쩌면 정치적 선택 등 ‘보이지 않는 손’에 떠밀려 세대 간 분배 순위에서 뒷줄에 섰다. 그 나이대에 누려야 할 성취(2030)와 안식(6070)을 맛보지 못한 세대다. (‘주변부 세대’ 검색어를 치면 공들여 쓴 17개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읽는 이에 따라 달랐겠지만, 개인적으론 사회 진입의 기회조차 봉쇄된 2030의 자포자기한 듯한 외침이 계속 귀에 맴돌았다. 역사상 최고의 스펙을 갖추고도 최악의 취업난을 견디는 그들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한 가지 질문을 떨칠 수 없었다. X세대라 불렸던 70년대 중반생인 내가 80년대 후반이나 90년대에 태어났더라면?

지방 소도시에서 태어난 공무원의 아들은 사교육 세례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선행학습은 어려웠을 테고, 정보전쟁으로 불리는 수시전형에서 죽을 쑤었을 게 뻔하다. 취업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토익 하나뿐인 어학성적, 학사경고에 CㆍD 학점을 지우지 못한 성적증명서, 1종보통 운전면허가 자격증의 전부인 허접한 스펙으론 서류전형에서 ‘광탈’을 거듭했을 게 분명하다. 분위기에 맞춰 스펙 쌓기에 몰두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랬다면 후회 없이 해 볼 것 다 했던 대학생활은 없었을 것이다.

1회 기사에서 한 서울대 졸업생은 “주변에서 도통 취직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없다”고 한탄했다. 내 주변은 어땠나. 서울로 함께 와 여러 학교로 흩어진 고교 동창들을 보면, 고시공부를 오래 한 경우를 빼면 구직을 했음에도 직장을 잡지 못한 친구는 없었다.

지금 청년에게 주어진 출발점은 우리 세대가 섰던 시작점보다 훨씬 더 뒤로 밀려나 있다. 동질성 강한 한 나라 안에서 불과 반 세대 차이를 두고, 비슷한 역량을 지닌 청년들의 희비가 이렇게나 극명하게 엇갈리는 일은 과연 정당한가.

한 세대의 소외는 그 세대만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고충, 세대의 고민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풀어야 할 구조적 숙제가 된다. 청년을 황량한 언저리에 방치한 채 공정과 정의를 말할 수는 없다.

한국일보 기사를 본 어떤 네티즌은 “또 세대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다”고 타박했다.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세대 불균형은 실재했고, 동료 기자들이 만난 십수 명 청년의 현실에서 소외는 뚜렷이 목격됐다. 문제 해결은 불편한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한다. 외면한다고 갈등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각 세대에 주어지는 사회적 인프라의 초기값(디폴트) 편차를 줄이는 것이 바로 세대 갈등을 해소하는 길이다.

겪어보지 않은 고난에 대응하려면 해 보지 않은 과감한 접근이 필요할 수 있다. 구직활동에 지원금을 주는 청년기본소득, 출발점에 선 청년에게 일정한 목돈을 지원하는 기초자산제 도입도 공론화할 필요가 있겠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가장 우선적으로 사회적 자원을 쏟아 부어야 할 그늘이 몇 군데 있다면, 그 중 하나는 의심의 여지 없이 바로 ‘청년’이어야 할 것이다.

이영창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