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루기 힘든 짐승, 질투

입력
2021.01.06 04:30
26면
1.6 낸시 캐리건과 토냐 하딩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고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다던 시인 기형도의 자조는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회오로 끝을 맺는다. 그래서 시의 제목 '질투는 나의 힘'은, 도돌이표처럼 제목이면서 스스로 시의 첫 행이 된다. 질투의 끝은 저마다 다르고, 닫힌 회로를 끝없이 맴돌 수도 있지만, 운명의 구원 없이 출구를 찾는 데는 스스로를 긍정하려는 안간힘만 한 게 없다. 물론,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닌 허다한 일들처럼 그게 쉽지는 않다. 질투는 힘이 세다.

고대 희랍의 에우리피데스(예컨대 '메데이아')가, 셰익스피어(대표적으로 '오셀로')가, 동시대 작가 아니 에르노와 로보그리예가 '질투'의 심연을 보려던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에르노의 '집착'은 여성의 질투를, 로보그리예의 '질투'는 남성의 질투를 탐구했지만, 늪같은 힘은 같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질투심은 교양으로 감추거나 얼마간 제어할 수는 있어도 완벽하게 제거할 수는 없는 인간 본성이며, '나'와 같은 영역의 경쟁자의 성취가 도드라질수록 더 격렬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격렬한 질투심을 범죄 정상 참작 사유로 인정하는 국가도 있다.

열등감과 시기, 질투로 요동치는 정서를 모차르트에 대한 살리에리의 그것에 빗대 '살리에리 증후군'이라 한다. 남의 불행이나 좌절, 고통을 보며 느끼는 행복감을 가리키는 말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도 '살리에리 증후군'의 이면일 것이다.

가장 강렬한 질투의 영역은 아마도 연애(사랑)일 것이다. 허구와 실제의 숱한 범죄들이 거기서, 소위 치정(癡情)에서 비롯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연애 못지않게 격렬한 질투의 영역이 스포츠, 특히 개인 기록 스포츠일지 모른다.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미국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한 전미선수권 대회 직전인 1994년 1월 6일, 미국 피겨스케이팅 1인자 낸시 캐리건이 폭력배에게 피습당했다. 경쟁자 토냐 하딩과 그의 전남편이 연루된 청부 폭력이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