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1일 올해 의사 국가고시(국시) 응시를 거부한 의과대학 본과 4학년생들에게 내년 시험 기회를 부여하기로 한 데 대해 공정성과 형평성 원칙을 훼손했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정부는 당초 내년 하반기로 예정된 국시 일정을 상‧하반기 두 차례로 나눠 국시 거부 의대생들이 1월 시험을 치르고 인턴으로 지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보건복지부는 유례 없는 ‘1월 국시’를 위해 관련 규정까지 고치겠다면서도 “구제는 아니다”라고 밝혀 비판 여론을 부채질했다. 이창준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국시 응시자에 대해 별도의 사과 요구를 할 계획은 없다"며 "재응시 기회나 구제가 아니라 내년도 시험을 두 번에 나눠 실시하는 것"이라며 "최대한 의료인력 공백이 생기지 않게 하는 차원에서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대생들이 시험 거부 단체행동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은 상황에서 응시 기회가 주어지는 데 대해 온라인을 중심으로 부정적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한 누리꾼은 “새 의사 채용이 보통 3월에 이뤄지기 때문에 1월 시험 보는 건 재시험이나 다름 없다”며 “사실상 재시험과 똑같은 효과지만 ‘2회로 나눈다’고 포장했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누리꾼은 “국민 목숨 볼모로 잡고 집단으로 떼쓰면 결국엔 들어준다는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비판했다. "(국시 거부 의대생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거나 다름 없다. 본인 선택에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앞서 이달 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의대생 국가고시 재응시의 특혜를 막아주세요”란 청원에는 이날 오후 2시까지 11만3,000명이 동의했다. 청원인은 “확진자, 자가격리자가 되어 시험 볼 기회조차 박탈당한 임용고시 준비생들의 눈물과, 대학별 고사를 볼 수 없게 되어 내년 재수학원을 알아보러 다녀야 하는 고3 엄마의 심정을 생각해 달라”며 “대한민국에 아직 공정이라는 것이 숨이 붙어 있다면, 더 이상의 특권집단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
또 29일 "형평성, 공정성, 윤리적인 면에서 벗어난 국시거부 의대생 재응시 절대 반대합니다"란 글을 올린 청원자는 “만약 의대생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한다면 코로나19 업무에 일정 기간 종사하도록 조건을 붙이는 것이 타당하다”고도 제안했다.
시험을 다시 치를 수 있게 된 의대생들과 의료인력 수급 문제를 걱정한 의료인들은 정부 발표를 환영했다. 지난 9월 국시를 거부했던 한 수도권 의대 본과 4학년생은 “정부에서 큰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권성택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회장(서울대 의대 교수)은 “의료인력 공백을 감안할 때 11~12월 의사국시가 필요하다고 절실히 얘기해왔다. 1월 말 시행 발표는 당연한 결과”라고 했다.
공무원 임용 같은 여타 국가시험과의 형평성을 달리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한희철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이사장(고려대 의대 교수)은 “형평성, 공정성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 국민 건강이 중요하다는 의견에 정부가 동의하고 용단을 내린 것”이라면서 “의사 국시는 면허시험이고, 일부 국가는 졸업만으로 (면허증이) 부여되는 만큼 다른 국가시험과 구분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