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다 보면 생각지도 않았던 것들이 중요해진다. 예상보다 빨리 해가 꼴딱 넘어가 어두컴컴해진 겨울철 밤길에 당황하기도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기껏 언덕을 올랐는데 도무지 석양이 지지 않는 어느 여름저녁도 겪다 보면, 도시에 사는 동안 창 밖에서 뜨고 지는 해에 얼마나 무관심했나 깨닫게 된다.
이리 무심한 우리도 해 뜨는 시간이 갑자기 궁금해지는 때가 바로 오늘이다. 새해 첫날 남다른 해돋이를 바라는 맘은 전 세계 사람이 매 한가지라, 이맘때면 경쟁이라도 하듯 멋진 일출사진들이 올라온다. 그 중에서도 데굴데굴 자갈만 굴러다니는 황량한 바위산, 비바람과 함께 바닥을 뒹군 거대한 두상들, 햇살과 그림자에 표정이 달라지는 돌 조각. 터키 넴루트 산꼭대기에서 2,000년 동안 무덤을 지켜 온 석상들이 맞는 일출만큼 여행자의 영혼을 앗아 버리는 장면도 흔치 않다.
그 사진 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이스탄불에서 짧게 잡아도 1,300㎞, 우리나라 8배 크기인 터키 땅을 가로질러야 하니 버스가 쉬지 않고 달려도 꼬박 16시간이다. 게다가 그 특별하다는 일출과 일몰을 모두 다 보려면 해발 2,000m를 훌쩍 넘는 산 정상까지 올라가 하룻밤 자는 수 밖에 없다. 마른 먼지가 풀풀 일어나는 산정의 숙소에 짐을 푼 여행자들은 터덜터덜 돌무더기 산을 걸어 오른다. 고개를 가누기 힘들 정도로 세찬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오는데,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천천히 움직여야 하는 고산지대라 날씨마저 변화무쌍하다. 차디찬 칼바람을 맞으며 무덤 서쪽을 지키는 석상에 드리워지는 노을을 보고, 또 다음 날 무덤의 동쪽으로 뜨는 해를 기다리려면 한여름에도 털옷은 필수. 두툼한 담요를 둘둘 말고 온 이들이 한없이 부러울 지경이다.
대체 이 높은 곳에 무덤을 왜 만든 거야, 간간이 투덜거리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힘을 가진 이의 무덤만큼 한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곳도, 동시에 그 욕망이 덧없음을 드러내는 곳도 없다. 영혼이 승천한다고 믿었던 이 무덤의 주인 안티오코스 1세는 조금이라도 하늘과 더 가까워지려고 왕국에서 가장 높은 산 꼭대기에 60만톤의 자갈을 쌓아 올려 인공 산을 만든다. 스스로를 신이라 여기며 그리스와 페르시아 신화 속 신들 사이에 자신의 석상도 만들어 세웠지만, 그의 왕국은 고작 200년을 갔을 뿐이다. 무덤 앞을 지키던 신상들은 지진으로 목이 잘린 채 허물어져 내렸고, 후세를 위해 남겨 둔 북쪽 테라스는 영영 채우지 못했다.
아찔한 추위를 참으며 일출을 기다린 이들은 그 누구보다 하늘 가까이에서 태양의 기운을 받은 덕에 좀 더 행복해졌을까? 이제와 생각해 보면 나에게 그날의 일출이 특별했던 이유는 찾아가는 데 하루, 산을 오르는 데 하루, 다시 돌아오는 데 또 하루, 그 짧은 순간 하나를 위해서 나에게 오롯이 내주었던 시간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삶을 정말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매일 일어나는 사소한 사건들”이라는 피트 닥터 감독의 말처럼, 무언가를 각별하게 만드는 건 그걸 유심히 바라보는 마음 자체다. 그 마음에 따라 우리의 일상은 덩어리진 채 뭉개진 기억이 될 수도 있고, 한 알 한 알 소소하지만 선명하게 새겨진 추억이 될 수도 있고, 내 거실의 창으로 바라보는 태양이 곧 넴루트의 태양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