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흥한 자, 법으로 망한다

입력
2020.12.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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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흥분 속에 새천년을 맞이한 지 20년이 되던 해였다. 새해를 맞이하면 다가올 날들에 대한 엄숙함이 밀려든다. 새해 분위기도 1월 초순 무렵이 지나면 덤덤해진다. 한 주일도 화요일이 지나면 금방 주말이고, 열흘만 지나면 이내 월말이다. 그렇게 시간은 저마다 자기 나이 숫자만큼의 속도로 흘러 세월로 쌓여간다. 1월 1일 새해 첫날이 되면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약속장소에 가면, 먼저 와서 기다리는 동료들이 반긴다. 대여섯 친구들이 해마다 같은 장소에서 만난 후 그간의 안부를 나누고 은사님 댁으로 향한다. 1935년생이신 은사님은 한복 차림으로 활짝 웃으며 반겨주신다. 거실에 있던 손님들이 다른 방으로 옮겨 가면, 은사님께 세배를 올린다. 잠시 앉아 덕담을 들을 때면, 나는 벽에 걸려 있는 액자를 바라본다. “百尺竿頭 須進步 十方世界 顯全身(백척간두 수진보 시방세계 현전신)” 백척 높이의 흔들리는 장대 위에서 한 발을 내디디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뜻이다. 저런 자세로 올해도 살아보자고 다짐해본다. 그 후에는 서재로 자리를 옮겨 떡국으로 점심을 하며, 여러 사회 현안을 대화의 소재로 삼는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새해 첫날을 그렇게 축복하며 시작했다.

2021년을 앞둔 현재 우리는 백척간두에 서 있는 느낌이다. 사람끼리 서로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사람을 멀리해야 하니, 모든 것이 힘들다. 이런 와중에 검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권력 싸움으로 국민은 두 편으로 갈라져 있다. 검찰총장은 국정감사장에서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선전포고를 했다. ‘부하’라는 용어는 군인사법에서 유일하게 사용될 뿐, 조폭들이나 사용하는 비속어라서 공직자가 입에 올릴 단어가 아니다. 법무부장관은 이에 징계 처분으로 응수했고, 대통령은 그 징계 결정을 재가하여 총장에 대한 불신을 표명했다. 고위 공직자라면 거취를 결정해야 할 상황이지만, 총장은 법정투쟁으로 대통령 처분을 뒤집고 집행정지까지 받아냈다. 그리고 금의환향하듯, 출근하는 일을 반복한다.

1988년 검찰총장 임기제가 도입된 이후 임명되었던 21명의 총장 중에서 13명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러니 대통령은 총장 임기 전이라도 인사 조치할 수 있었지만, 법절차에 의존하다가 낭패를 당했다. 변호사 출신 대통령, 판사 출신 장관이 현직 검사 한 명 앞에서 쩔쩔매고 있다. 검찰은 소속 장관은 물론 대통령과도 겨눌 정도로 강해졌다. 이제 윤 총장 눈앞에는 대통령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번 기세를 몰아 어디에든 비수를 꽂을 태세다. 칼로 흥한 자가 칼로 망하듯, 법으로 흥한 자는 법으로 망한다.

검찰 개혁 구호가 요란하다. 개혁 의지가 있다면 연초에 마련해 둔 수사와 기소 분리 방안부터 도입해야 한다. 검찰권 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가 정착되지 않으면 검찰은 변하지 않는다. 친정부 성향 검사들을 중용하고, 눈 밖에 난 검사들 내쫓는 인사로 검찰이 개혁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분노와 복수심만 잉태하게 만들고, 정권교체만 기다리게 만든다. 지금도 거대 여당을 가진 정권이 검사 한 명 앞에서 맥을 못추는데, 앞으로 정권이 교체되거나 퇴임하면 그 안녕을 누가 장담하겠는가. 세상이 악인의 손에 넘어가고, 재판관의 눈이 가려져 제대로 판결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가 아닌가.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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