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고 낮은 땅' 기네스의 고집

입력
2020.12.3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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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 기네스의 전설


진한 포크 음악과 '더블린 사람들'의 제임스 조이스, 흑맥주 '기네스'는 아일랜드의 자랑거리다. 세계인의 노래 ''대니 보이(Danny Boy)'는 북아일랜드 민요(Londonderry Air) 가락에 잉글랜드 시인(Frederic Weatherly)이 가사를 지어 잉글랜드 민요라고도 하지만, 저 가락에는 북아일랜드가 영국이 되기 이전, 잉글랜드의 지배와 수탈이 시작된 16세기보다도 먼 바이킹과 노르만 정복기부터 침략과 저항, 디아스포라의 설움과 체념과 억눌린 분노가 밈(meme)처럼 스며 있다.

'대니 보이'의 가락은 조이스의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의 애잔한 정조, 특히 늙은 '두 자매'나 '더 데드'의 문장들에 밴 감상은 이 민요의 변주라 할 만하다. 예컨대 이런 문장. "그는 그 광경을 쳐다보며 인생을 생각했다. 그리고 (…) 슬퍼졌다. 잔잔한 비애가 그를 사로잡았다. 운명에 맞서 싸우는 것이란 얼마나 부질없는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운명도 누대에 걸쳐 그에게 남겨진 지혜의 짐일진대."(창비 번역 성은애)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Dublin)은 그들 언어로 '검고 낮은 땅(Dubh linn)이란 의미다. 기네스 맥주 브루어리의 창립자 아서 기네스(Arthur Guinness·1725~1803)가 대부(代父)에게서 유산으로 받은 100파운드를 밑천으로, 1759년 12월 31일 더블린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St. James Gate)의 다 허물어져 가는 양조공장 부지를 임차해 생의 승부를 건 아이템이 '완벽하고도 진한 흑맥주'였다는 건 우연치곤 고집스런 우연이다. 하지만 '향후 9,000년간 연세(年貰) 45파운드'라는 경이로운 부지 임차계약은 다부진 결기의 반영이었다.

근년의 기네스는 세계 50여국에 양조장을 두고 거의 전 세계에 진출한 흑맥주의 대명사가 됐다. 그 크리미(creamy)한 맛이 바다 건너 영국만 가도 달라진다는, 나빠진다는 평도 사연을 겹쳐 보면 예사롭지 않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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