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입력
2020.12.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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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 라이너 마리아 릴케


릴케(1875.12.4~ 1926.12.29)는 장미 가시에 찔린 상처가 덧나 숨졌다는 항간의 이야기와 달리, 3년여간 백혈병으로 극심한 고통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위스 발롱의 한 요양원에서 외롭게 숨졌다. 발레 칸톤 라롱(Raron)의 성미카엘암석교회에 있는 그의 무덤에는, 직접 지어 비명(碑銘)으로 써달라고 유언한 시구의 비석이 섰다.

"Rose, oh reiner Widerspruch, Lust, niemandes Schlaf zu sein unter soviel Lidern"

영문 위키피디아는 숱한 영역 버전 중 "Rose, O pure contradiction, desire to be no one's sleep beneath so many lids"를 택했다. 한국어로는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누구의 잠도 되지 않겠다는 갈망이여"쯤의 의미다. 독문학자 겸 비평가 김주연은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그 누구의 잠도 아닌 잠이여"로 옮겼다.

의미를 두고도 해석이 분분하다. 잠을 거부하며 다시 피는 장미처럼, 불멸의 바람을 담은 것이라는 설이 있고, 불멸의 주체가 자신(의 명성)이 아니라 문학(시)이라는 해석도 있다. 궁극의 시적 아름다움을 잠을 거부하는 장미의 꽃잎들로 은유했다는 의미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가 만난 시인들 가운데 "릴케만큼 소리 없이, 비밀스럽게,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살았던 사람은 없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그의 고독은 의도한 것도, 성직자연하는 장엄한 고독도 아닌 몸에 밴 고독이어서, 모든 소음을 차단함으로써 '하나의 이름 주위에 모여 오는 모든 오해의 총계'까지 피할 수 있었다고 했다.

겹겹의 눈꺼풀에 덮여도 누구의 잠도 되지 않겠다는 마지막 고집, 그 순수한 모순은, 그가 살아낸 세상의 소음 안에서 고독으로 지켜낸 시인의 삶 자체에 대한, 겹의 은유일 수도 있겠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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