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 전차에 ‘독일산 심장’ 달아도 국산 명품 무기일까

입력
2020.12.28 10:00
<9> 무기 국산화의 조건

편집자주

2014년 잠시 연재했던 ‘정승임의 궁금하군’을 다시 새롭게 시작합니다. 군 세계에 정통한 고수보다는 ‘군알못’(군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글을 씁니다.

우여곡절 끝에 3차 양산에 들어간 국산 'K2 흑표 전차'에 이번에도 ‘반(半) 독일제 심장’이 달렸습니다. 전차의 심장은 엔진과 변속기, 냉각 장치로 구성된 '파워팩'을 가리킵니다. 55톤짜리 무거운 몸뚱이의 전차가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는 핵심 장비라 ‘심장’으로 불리지요.

군 당국은 1, 2차에 이어 3차 양산에서도 독일산 변속기를 달기로 결정했습니다. 지난달 서욱 국방부 장관 주재로 열린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혼합 파워팩(국산 엔진+독일산 변속기)을 장착한 K2 전차의 3차 양산(2023년까지 50여대) 계획이 의결된 겁니다. 변속기 국산화에 성공해 ‘100% 한국산 심장’을 달려던 계획은 이번에도 무산됐습니다.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한 K2 전차는 1970년대부터 전차 개발의 꿈을 키운 한국 군에 ‘옥동자’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전차 강국인 독일의 레오파드 A6EX나 미국의 M1A2 SEP, 프랑스의 르클레르 등 선진국 주력 전차와 견줄 정도의 성능을 보유했습니다. 최대 70㎞/h의 속도로 달릴 수 있고, 4m 이상을 잠수해 하천을 건널 수도 있습니다. 120㎜ 활강포를 장착해 막강 화력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해외에서 들여온 장비로 조립한 K2 전차를 과연 온전한 국산 명품무기로 볼 수 있는 건지 말입니다. 우리 손으로 만든 전차 몸뚱이에 핵심 장비를 독일제로 충당한 것이 ‘옥의 티’로 보이기도 합니다.


K2 전차 국산화율 84%... 핵심은 ‘체계 조립 기술’

과거 소총 한 자루 만들지 못했던 우리나라는 1970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설립하면서 무기 개발에 팔을 걷어 붙입니다. 1968년 김신조의 청와대 습격과 북한군의 푸에블로호(미 해군 정찰함) 납치 사건을 겪으면서 미군에 의지하지 않고 자주 국방의 노선을 걷기로 한 겁니다.

하지만 무기 생산의 근간이 되는 금속, 전기, 기계 등 기반 사업은 물론 기술도 전무했던 때라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습니다. 미군으로부터 조달한 소총과 박격포, M1 에이브럼스 전차 등을 뜯어 보고 재조립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 둘씩 국산 마크를 단 무기를 만들어갑니다. 터키와 폴란드, 노르웨이, 핀란드, 에스토니아 등에 600여문을 수출한 K9 자주포(한화디펜스), 해외 VIP들이 눈독 들인다는 대전차 유도무기 현궁(LIG 넥스원), 한국항공우주산업(KAIㆍ카이)의 고등훈련기 T-50과 경공격기 FA-50 등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이 무기들이 100% 국산 부품으로만 채워지는 건 아닙니다. K9 자주포만 해도 국산화율이 80%입니다. 엔진은 독일산을 씁니다. 그럼에도 세계 자주포 시장의 절반을 점유하는 한국산 명품 무기라는 데 아무도 토를 달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부품이 ‘어디서’ 왔는지가 아니라 ‘누가’ 체계를 조립했는지가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국산 부품이 아무리 많아도 이 체계를 통합해 하나의 장비로 거듭나게 하는 기술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요.

2000년대 초반만해도 부품 국산화율이 60~70%에 머물렀던 삼성전자 휴대폰 ‘애니콜’을 주저하지 않고 국산이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지요. 반대로 KAI가 보잉이나 에어버스에 항공기 동체나 꼬리(미익)를 만들어 납품한다 해도, ‘KAI 항공기’가 되는 것도 아니고요.

무기 국산화율을 산정하는 기준은 부품과 가격 비중입니다. 통상 국산 비중이 60%를 넘으면 ‘메이드 인 코리아’로 인정받는다고 합니다. 첨단 기술을 필요로하는 항공 무기인 T-50과 FA-50가 국산 마크를 다는 것도 체계 조립을 KAI가 하는데다 국산화율이 60%가 넘기 때문입니다. K2 전차 역시 국산화율이 84%로 꽤 높은 편입니다. 독일산 변속기를 달아도, 그 비중만큼 국산화율에서 빠질 뿐 ‘국산 명품 무기’라는 정체성이 변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국산화율 집착은 ‘과도한 애국주의’

투철한 애국심 때문일까요. 우리나라만큼 유독 국산화율에 집착하는 민족(?)도 없다는 게 방산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입니다. K2 전차 전력화가 늦어진 이유로도 ‘국산 변속기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꼽힙니다.

국산 변속기 개발이 불발된 건 개발업체인 S&T 중공업이 내구도 성능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시험 평가에서 7,000여㎞를 달리다가 볼트 하나가 파손되는 바람에 작전요구성능(ROC)인 ‘고장 없이 9600㎞를 달려야 한다’를 충족하지 못한 겁니다. 국산화가 지연되고 업체가 어려움을 겪자, 국회를 중심으로 “왜 국산에만 완벽한 제품을 요구하느냐”며 “일단 국산으로 장착해서 추후에 성능을 높여가자”는 요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군 당국의 배려가 없던 건 아닙니다. 2003년 외국산 변속기로 K2 전차를 개발하기로 했지만, 2005년 ‘국산화가 가능하다’는 업체 말에 솔깃해 계획을 바꿉니다. 하지만 15년이 넘도록 업체는 본인들이 제시한 개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합니다. 중간에 ‘시속 32㎞까지 8초 이내에 도달해야 한다’는 기준을 맞추지 못하자, 방사청이 가속 성능 기준을 9초로 낮춰주기까지 했는데도 말입니다. 변속기 하나 때문에 K2 전차 전력화가 10년 가까이 지연되면서 이를 납품하는 완성업체 현대로템은 물론 육군도 애가 타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결국 군 당국이 ‘국산 변속기’를 과감하게 포기한 겁니다.

방산 전문가들은 글로벌 시대에 ‘국산화율’에 집착하는 것은 ‘애국주의의 함정’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조달할 수 없다면 외국산을 수입해서라도 ‘제때, 필요한 무기를, 잘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죠. 항공 엔진을 만들 수 있는 업체는 미국의 GE, 영국의 롤스로이스 등 전세계에 3, 4곳 밖에 없는데, 우리 손으로 엔진까지 만들어 전투기를 완성하겠다는 발상은 무모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목숨’을 담보로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에게 성능이 떨어지는 장비로 ‘국산화 모험’을 하라는 건 더욱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애국 마케팅일 뿐이지요.



수출 걸림돌 없애려면 ‘부품 국산화’가 숙명이기도

그렇다고 부품 국산화에서 아예 손을 떼자는 건 아닙니다. 수출에 여러 제약이 따라붙는 무기 특성을 감안하면 부품 국산화 역시 숙명이기 때문입니다. 독일산 변속기를 장착하면 K2 전차를 해외에 수출할 때 독일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계약 조건에 따라 독일 정부가 반대하는 국가에 수출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진출을 꿈꿔온 FA-50는 핵심 부품 6개가 영국산이라 수출이 좌절될 위기라고 합니다. 아르헨티나에 무기 금수 조치를 한 영국이 FA-50 수출을 승인할 리 없기 때문이지요.

무기는 삼성 휴대폰이나 현대자동차와 달리 수출을 할 수 있는 나라가 극히 제한됩니다. 기본적으로 일본, 중국 등 인접국에는 수출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수출한 무기로 우리가 공격당하는 자충수가 되기 때문이지요. 냉전시대처럼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해도, 공산국에는 가급적 수출하지 않는다는 게 정부 방침입니다. 무기를 팔고도 돈을 떼일 염려 때문에 경제 여력이 되지 않는 나라와는 거래를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선택지를 좁히다 보면 북유럽, 동남아, 중동 정도가 남습니다.

무기 수출이 우리에게 ‘남는 장사’가 되기 위해서라도 부품 국산화는 필요합니다. 다만 ‘국산이니까 무조건 쓰자’가 아니라 ‘훌륭한 국산이니까 쓴다’는 방향이 돼야 할 겁니다. 군 당국이 K2전차 추가 양산 계획을 밝히진 않았지만, ‘변속기 국산화’도 언젠가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그 길이 앞으로는 국산화의 본말을 전도하지 않는 길이 되길 바랍니다.



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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