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직무배제 및 징계처분이라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초강수’로 수세에 몰렸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연전연승하며 '거물급 인사'로 돌아왔다. 반면 윤 총장 몰아내기를 주도하며 사의를 표명했던 추 장관은 최악의 결과를 받아든 채 불명예스러운 퇴장을 앞두고 있다. 연초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사생결단 승부는 연말이 돼서야 윤 총장의 완승으로 마무리되는 국면이다.
초반엔 싸움을 건 추 장관이 기세등등했다. 추 장관은 지난달 24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상 초유의 현직 검찰총장 직무배제 및 징계청구를 발표하며 윤 총장을 압박했다. 징계사유 가운데 ‘재판부 불법 사찰’ 의혹은 윤 총장에겐 특히 약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윤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물의야기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을 작성해 판사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는 '사법농단'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법무부 발표대로라면 '사법부 내부의 사찰'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던 그가 검찰에서 비슷한 일을 했다고 비판받기에 충분했다.
윤 총장은 추 장관의 공격에 행정소송을 제기해 법원 판단을 받는 것 말고는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윤 총장 징계를 의결할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는 위원회 구성부터 의결까지 사실상 추 장관이 좌지우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 총장으로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윤 총장을 겨냥한 감찰 및 징계 청구과정에서 정상적 절차에 따르지 않은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반전의 기회가 생겼다. 중요 감찰사안에 대해선 의무 개최하도록 돼있던 감찰위원회 규정을 기습적으로 임의규정으로 고친 사실이 알려졌고, 추 장관 편으로 분류됐던 검사들의 내부 폭로도 이어졌다. 법무부 감찰업무를 총괄하는 류혁 법무부 감찰관은 의사결정에서 배제된 것으로 밝혀졌고, 법무부 감찰관실에 파견됐던 이정화 검사도 '죄 안됨 보고서 삭제' 사실을 폭로했다.
검사들은 법 집행의 핵심인 절차의 불공정성을 지적하며 반발했다. 전국 59개 일선 검찰청에서 평검사회의가 열려 윤 총장 직무배제 및 징계청구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추 장관에게 반기를 들었다.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와 고검장 모두가 이례적으로 징계처분 철회를 요구하며 한목소리를 냈고, 추 장관을 보좌하던 고기영 법무부 차관마저 사퇴했다.
내부 폭로와 검사들의 반발로 추 장관의 입지는 좁아졌고 법무부 감찰위원회와 법원에서도 잇따라 윤 총장 손을 들어줬다. 결국 윤 총장은 직무배제 일주일만에 검찰로 복귀했다. 법무부 감찰위원회는 이달 1일 “법무부의 윤 총장 감찰 및 징계 청구는 절차적 하자가 있어 부당하다”는 권고 의견을 채택했다. 이어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 조미연)는 윤 총장이 추 장관을 상대로 낸 직무배제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했다.
연이은 패배에도 추 장관은 윤 총장 징계 청구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이달 10일과 15일 두 차례 열린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에서도 징계위원 기피신청 등 절차위반 논란이 또 불거졌다. 그럼에도 추 장관 측 인사들로 구성된 징계위는 윤 총장에 대해 정직 2개월 징계를 의결했다. 윤 총장 징계청구 방침을 사실상 묵인했던 문재인 대통령도 의결 14시간만에 추 장관의 제청을 재가했다.
하지만 법원이 또 한번 윤 총장 도우미 역할을 했다. 24일 징계처분 집행정지 신청 사건에서 재차 윤 총장 손을 들어주면서 윤 총장은 추 장관에게 최종적으로 완승을 거뒀다.
검찰 내부에선 윤 총장이 좌천됐다가 화려하게 복귀한 과거 사건을 언급하며 “윤석열이 또 살아났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2013년 국정감사 당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과정에서 ‘윗선’의 압력을 받았다고 폭로했다가 정직 1개월 징계를 받고 좌천됐다. 이후 국정농단 사건을 파헤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합류하면서 부활한 윤 총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과 동시에 서울중앙지검장에 파격 발탁된 뒤 총장 자리까지 꿰찼다.
지난 16일 문 대통령에게 윤 총장 징계를 제청하며 사의를 표명했던 추 장관은 윤 총장 복귀에 대해선 아무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여권 관계자는 “'윤석열 찍어내기' 실패는 추 장관뿐 아니라 정권 전체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며 “현재로선 후임 장관을 신속히 임명해 분위기 전환에 나서는 게 최선책”이라고 말했다. 지방검찰청의 한 고위 간부는 “추 장관 측근으로 분류되는 검찰 간부들이 사실관계를 제대로 보고하고 사심없이 일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