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결정문 키워드는 '징계의결 무효'… "사실상 본 소송도 尹 승소 확실"

입력
2020.12.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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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위원 기피의결 의사정족수 미달" 지적
본안 소송도 '징계 취소' 선고 가능성 높아
"법무부·징계위, 기본절차도 못 지켜" 비판
정한중 위원장은 법원 결정에 유감 드러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 처분 집행정지 신청 사건에서 ‘일부 인용’ 결론을 내리며 윤 총장 손을 들어준 법원은 결정문에서 “이 사건 집행정지는 그 자체로 만족적인 성질을 가진다”고 밝혔다. 윤 총장의 잔여 임기(7개월)를 감안할 때, ‘정직 2개월’이라는 징계의 임시 정지를 정한 이번 결정이 현실적으로는 본안소송(징계 취소소송) 판단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재판부가 1차 심문 때부터 “징계 처분의 실체적ㆍ절차적 위법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고 했던 이유다.

그런데 ‘실체적 위법성’에 대해 재판부가 징계 청구 사유로 “인정할 수 없다”는 단정을 내린 건 ‘정치적 중립 위반’ 혐의뿐이었다. 나머지 ‘재판부 분석 문건’ ‘채널A 사건 감찰ㆍ수사 방해’ 등 혐의에 대해선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며 여지를 남겼다. 일각에서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할 근거도 충분했던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런 질문이 애초 무의미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징계위원회의 징계 의결이 무효’라고 밝힌 대목 때문이다. 재판부는 “징계위원 기피의결이 재적위원 과반수가 되지 않는 3명만 참석한 상태에서 이뤄졌으므로 무효이고, 이에 따라 징계의결도 (기피사유가 해소 안 된 위원들이 참여해) 의사정족수 미달로 무효”라고 판단했다.

향후 본안소송도 이번 집행정지 신청 사건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 홍순욱)가 심리할 예정이다. 때문에 법조계 전문가들은 주요 쟁점들에 대한 재판부 판단이 바뀌지 않는 한, 본안 소송 1심에서도 ‘징계 취소’가 선고되는 건 기정사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윤 총장이 낸 취소소송은 ‘위법한 처분을 취소 혹은 변경해 달라’는 것으로, ‘처분의 효력 유무 또는 존재 여부 자체를 확인해 달라’는 무효 등 확인소송과는 다르다. 다만 취소소송을 낸 경우에도 그 처분에 무효 사유가 있다면, 법원은 원고 전부승소 판결(무효를 선언하는 의미의 취소판결)을 하게 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징계 의결이 무효인 만큼, 징계 사유를 어떻게 보느냐에 상관없이 본안도 ‘윤 총장 승소’가 사실상 확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행정소송 경험이 풍부한 다른 변호사도 “징계 사유에 대해서도 법무부가 소명을 제대로 못 했다는 판단에 가깝지만, 쐐기를 박은 건 ‘의결 무효’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때문에 법무부와 징계위에 대해서 ‘검찰총장을 징계하면서 기본 절차마저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징계 청구 직후부터 끊이지 않은 ‘절차적 위법’ 논란에도 불구, 급하게 징계 의결을 밀어붙이는 바람에 명분도, 실리도 잃었다는 뜻이다. 실제 재판부가 본안소송 결론을 이례적으로 빨리 내리고, 법무부가 항소 없이 곧바로 재징계 청구에 나선다 해도 윤 총장 임기 내에 다시 징계 의결을 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관측도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의사정족수를 맞추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인데, 그마저 지키지 못하고 결정문에서 지적을 당한 건 법무부로선 뼈아픈 부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징계위원장을 맡았던 정한중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법원 결정에 유감을 표명했다. 정 교수는 "검사징계법을 문언대로 해석하면 기피 신청을 받은 자도 기피절차에 출석할 수 있지만 의결에 참여하면 안 된다고 해석해야 한다"면서 "기피 신청을 받은 자는 출석으로 보지 않겠다는 취지는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했다.

정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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