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반핵운동 성지에서 원전과 인류의 미래를 생각한다

입력
2020.12.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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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전남 영광

편집자주

진보 정치학자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가 대한민국 곳곳을 다니며 역사적 장소와 현재적 의미를 찾아보는 ‘한국근대현대사 기행’을 매주 월요일 한국일보에 연재한다. 코로나19시대 '의미있는 여행'의 안내자가 되고자 한다.

영광하면 떠오르는 것이 법성포 굴비다. 법성포를 끼고 달리는 백수해안도로는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이 도로를 지나 북쪽으로 달려 홍농읍 성산리 마을쪽으로 들어가면 작은 정자가 나타난다. 정자에 오르면 여섯 개의 거대한 회색 반원들이 눈앞에 나타난다. 영광 1호기에서 6호기에 이르는 원자로들이다. 그렇다. 영광은 이제 ‘굴비마을’을 넘어서 고리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원전 마을’이다. 특히 영광은 ‘한국반핵운동의 성지’, ‘한국반핵운동의 메카’이다.

우리나라에 원자력발전이 처음 도입된 것은 1978년에 미국의 기술로 건설된 고리 1호기다. 2단계는 자체 기술을 축적하던 시기로 영광의 핵발전소(영광 1, 2호)가 고리 3,4호와 함께 1980년대 초에 시작하여 1986년 준공, 가동됐다. 3단계는 1980년대 중반 영광 3, 4호기가 월성 2, 3, 4, 5기 등과 함께 만들어지고, 한국형 표준원자로 설계가 확립되는 시기다. 4단계는 2000년대 초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원전 건설 이후로, 영광 5, 6호기, 울진 5, 6호기가 설치됐다. 주목할 것은 영광에는 2단계부터 4단계까지 모든 원전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영광에 원자력발전소를 세우기로 한 것은 유신말기였던 1978년이었다. 유신 정권은 ‘전원(電源)개발특례법’까지 만들었고, 광주 '학살'을 통해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주민들의 오랜 삶의 터전들을 헐값에 강제 수용했다. 전두환은 1981년 1월에 기공식도 참석했다. 당시는 주민들이 원전이 무엇인지 잘 몰랐을 뿐 아니라, 발전소가 들어오면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고, 서슬 퍼런 군사독재에 반대는 엄두도 못 낼 상황이었다. 그러나 발전소 폐수 때문에 조개류가 폐사하고 기형적 물고기가 잡히는가 하면, 사산되거나 유산되는 송아지가 느는 등 피해가 늘어났다. 특히 1987년 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터져 국제적으로 원전의 위험성이 문제가 되면서 비판적 문제의식이 늘어났다.

"한국에서 반핵운동은 체르노빌 이후에 시작됐고, 한국 원전의 진화에 맞추어 함께 진화해 왔습니다.” 가톨릭농민회에서 핵발전소반대운동을 시작해 지난 30여 년간 투쟁을 하고 있는 한국반핵운동의 산 증인인 김용국 영광핵발전주민대책위 위원장은 회상했다. “체르노빌이 터지고 1987년 민주화가 되면서 원전에 가까운 가가미 해수욕장 주민 등이 발전소 정문 앞에서 관광 어업피해보상투쟁을 벌였는데 그것이 국내 최초의 반핵투쟁이었습니다.” 당시는 민주화운동과 연계되어 일반 시민들의 호응도가 높아 1988년 말에는 서울에서 ‘반핵평화시민대회’를 열기도 했다. 그것이 영광반핵운동의 제1기다.

제 2기에는 영광 3, 4호기 건설과 관련해, 부실공사를 비판하며 가동 저지투쟁을 벌였다. 90년대 초 천주교 핵추방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원불교농민회, 영광사회운동협의회 등이 영광핵발전추방협의회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투쟁했다. “영광 3, 4호기는 한국형 원자로의 효시인데 충분한 준비도 없이 만들었어요, 원자로는 배관이 중요한데 처음 하다 보니 배관이 남거나 부족해 끊어서 붙여 도둑용접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91년에서 94년까지 가동저지 운동을 했습니다. 이 투쟁이 아니었으면, 한반도에 엄청난 핵사고가 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를 막기 위해 투쟁한 영광군민들에게 한전과 국민들이 감사해야 합니다.” 제 3기는 94년부터 영광 5, 6호기 건설을 저지하기 위해 싸운 시기이다. 영광지역이 해수조수의 흐름이 빠르고 수심이 낮아 온배수 저감시설이 불가능해 환경부도 문제를 제기했는데도 정부가 건설을 강행하려 들자 투쟁에 나선 것이다.

원전도 원전이지만, 원전이 있는 한 불가피하게 생기는 또 다른 문제는 원전의 부산물인 방사능폐기물(방폐물)을 처리하는 문제다. 노무현 정부 집권 첫해인 2003년 말, 인구 6만 명의 작은 도시인 부안에는 1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준전시상황’이 벌어졌다. 주민들의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부안의 위도에 방폐장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하자, 주민들이 거세게 저항하면서 ‘노무현정부의 광주사태’라는 부안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저항의 흔적들은 이제 사라졌지만, ‘핵없는 세상, 생명 평화의 부안’이라는, 국민은행 부안지점 옆의 기념비가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안면도 조각공원에 가면 기이하게 생긴 조형물이 있다. 자세히 보면, 안면도 모양에 방폐장 마크를 한 조각이다. 1990년 11월부터 2년 반 동안 핵폐기장 건설 반대를 통해 이를 저지한 ‘안면도항쟁’을 기념하는 것이다.

1988년 영덕·울진, 1990년 안면도, 1994년 굴업도, 2003년 부안. 방폐장을 건설하겠다고 정부가 추진하다가 실패한 사례들이다. 결국 정부는 공개경쟁을 통해 경주에 3,000억 원을 지원하는 대신 중저준위 방폐장을 짓기로 결정, 현재 운영 중이다. 문제는 아직 사용후핵연료 같은 가장 위험한 고준위 폐기물 처리문제가 남아있는 것이다. 경주와 건설계약당시 고준위는 짓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새로운 부지를 찾아야 한다. 임시방편으로 월성원전에서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를 임시보관할 건식저장소(맥스터)를 이 지역에 증설하기로 하면서 지역여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영광, 월성 등의 사용후핵연료 처리도 문제다. 한 환경운동가는 원전이 안고 있는 ‘배설물(방폐물)’ 문제를 지적하며, 원전은 “화장실 없는 고급맨션”이라고 비꼰 바 있다.

한국, 나아가 세계원전의 역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있다면, 그것은 2011년 후쿠시마원전사고다. 이는 원전의 안전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생생하게 보여줬고, 이에 따라 많은 나라들이 탈원전으로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 중 하나다. 물론 그동안 원전이 ‘싼 에너지원’으로 우리의 경제발전과 생활에 기여해 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태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사고의 위험, 방폐물 처리문제 등을 고려할 때 중장기적인 비용은 이득을 넘어선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것이 많은 환경운동가,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문재인정부는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탈원전정책을 추구해 나가고 있다. 구체적으로, ‘원자력 제로’를 목표로 신규원전 건설을 백지화하고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을 중단하는 등 탈원전정책을 펴 원전의 비중을 2030년까지 30%에서 18%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신고리원전 5, 6호기 공사에 대해 시민배심원단으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에 중단여부를 결정하도록 위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다. 감사원장은 최근 “대선에서 41%의 지지밖에 받지 못한 정부의 국정과제가 국민의 합의를 얻었다고 할 수 있느냐”고 문제를 제기했고, 감사원은 월성1호기 폐쇄결정이 경제성을 불합리하게 평가했다는 비판적인 보고서를 발표했다. 검찰은 감사원 감사를 대비해 주요서류들을 파기한 공무원들에 대해 수사를 하고 있다(설사 탈원전이 올바른 정책이더라도, 이를 추진하기 위해 서류와 평가 등을 조작했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다. 목적이 옳다 해서, 옳지 않은 수단을 써선 안 될 것이다.) 나아가 잘못된 탈원전정책으로 한전의 적자가 누적되고 있으며 온실 가스가 증가하고 있고 국제경쟁력을 갖춘 원전산업이 붕괴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하니 탈원전정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런 만큼 탄소중립 등과 관련해 원전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논쟁이 필요하다. 이 같은 논쟁과는 별개로 영광의 반핵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노후화된 1, 2호기 출력증가반대, 사용 후 핵연료에 대한 대책 마련, 온배수 저감장치 설치 등을 위해 오늘도 싸우고 있는 김 위원장은 말한다. “후쿠시마 사고를 근거로 시뮬레이션을 해 안전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핵발전 사고는 사소한 실수로부터 자연재해까지 위험요소가 너무 많습니다. 원전에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광에서 사고가 나면 한반도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원전은 영광이나 고리, 월성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친합니다.”

성산리를 떠나려는데 ‘성산리와 한빛원전은 상생합니다’라고 쓴 성산리 통합발전위원회의 현수막이 눈에 뜨였다. 나는 물었다. 이 현수막의 표현처럼, 과연 원전과 인류, 나아가 지구는 장기적으로 상생할 수 있는 것일까.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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