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잠금해제' 강제법, 과연 가능할까

입력
2020.12.28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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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끝> 秋, '한동훈 방지법' 입법 추진했다가 역풍
"수사상 필요" 강조 불구, '기본권 제한 반대'에 발목
"국민적 합의 후 테러 등 범죄에만 적용해야" 지적

편집자주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간간이 조명될 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는 여전히 어려운 법조계. 철저히 베일에 싸인 그들만의 세상에는 속설과 관행도 무성합니다. ‘법조캐슬’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국일보>가 격주 월요일마다 그 이면을 뒤집어 보여 드립니다.

올해 상반기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드라마 ‘인간수업’의 주인공인 오지수(김동희 분)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지만, 성매매를 알선해 생활비를 벌고 대학 진학을 위한 학비를 모은다. 같은 학교 학생 배규리(박주현 분)는 우연히 오지수가 성매매 알선에 사용하는 휴대폰 비밀번호를 ‘잠금해제’하면서 오지수의 이중생활을 파악하고 범행에 합류한다. '인간수업'뿐 아니라 다른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도 휴대폰 안의 정보가 극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면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실제로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 휴대폰은 일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그만큼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기만 해도 사용자가 자주 다닌 곳, 포털 등의 검색 이력을 통한 관심사, 은행 및 주식 거래 내역, 자주 연락하는 사람, 일정, 이메일 등을 손쉽게 알 수 있다. 각종 데이터를 인터넷과 연결된 중앙 컴퓨터에 저장, 언제 어디서든 분석ㆍ관리할 수 있게 하는 ‘클라우드’와 연동하면 사실상 휴대폰 사용자의 모든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보의 보고' 스마트폰, 못 열면 수사는 지지부진

수사기관이 이런 ‘정보의 보고(寶庫)’인 휴대폰을 가만둘 리 없다.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의 피의자 한동훈 검사장의 비협조로 검찰 수사가 장기화하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12일 ‘휴대폰 잠금해제 강제 이행’을 위한 입법을 주문한 것도 한 검사장의 휴대폰 때문이다. 한 검사장이 사용하고 있는 아이폰11의 잠금 상태를 해제하지 못한 탓에 검찰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아예 법적으로 수사 대상의 휴대폰을 열도록 강제하는 이른바 ‘한동훈 방지법’을 추진하겠다는 취지였다.

아이폰이 수사의 걸림돌이 된 건 한 검사장 사건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 7월 극단적 선택을 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도 최신 아이폰을 사용했는데, 유족 측이 뒤늦게 비밀번호를 제공해 최근에서야 경찰이 포렌식 작업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또, ‘n번방’ 사건에서도 주범 조주빈이 스마트폰 잠금해제 비밀번호와 n번방 운영으로 벌어들인 범죄수익을 넣어둔 가상화폐 계좌 비밀번호를 함구해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이런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2015년 총기 테러를 일으키고 도주하다 경찰 총격으로 사망한 사예드 파룩이 쓰던 아이폰 5C에 수사기관이 접근하는데 애를 먹으면서 진상 규명이 더뎌졌던 게 대표적이다. 또, 2017년 11월 텍사스주 한 교회에서 총기를 난사한 데빈 켈리 사건에서도 미 연방수사국(FBI)이 아이폰 비밀번호 잠금해제를 두고 애플과 신경전을 벌이는 일이 있었다.

수사기관이 아이폰에 발목이 잡히는 건 ‘높은 보안성’ 때문이다. 아이폰은 잠금해제 시도 과정에서 10회 이상 비밀번호를 틀릴 경우 휴대폰이 초기화돼 저장된 정보가 모두 삭제된다. 휴대폰 사용자가 순순히 알려주지 않는 한, 임의로 비밀번호를 입력해 열어야 하는데 10회 이내에 비밀번호를 맞추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자동 초기화’를 막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디지털포렌식 전문가인 이상진 고려대 교수는 “아이폰의 버전이 올라가면서 보안성이 강화되면 해커나 기술자들이 이를 뚫는 식”이라면서 “애플의 보안을 뚫는 기술이 뒤늦게 따라가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뚫기 힘든 아이폰을 들여다보기 위해 수사기관은 피의자 등에게 비밀번호를 제공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휴대폰 비밀번호 잠금해제를 거부하는 피의자나 참고인이 드물다고 한다. 수사기관이 다른 방식으로 증거를 확보했을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비밀번호 제공' 강제 수단은 없어

하지만 현행 법령상 휴대폰 비밀번호를 진술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수사과정에서 쟁점화한 사례가 드문 탓에 확립된 판례도 사실상 없는 것과 다름 없다. 일단은 버티면 된다는 얘기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예전에 변호사들은 통화녹음 기능이 탑재된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을 써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비밀번호를 말하지 않는 이상 잠금해제를 못 하는 아이폰을 쓴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스마트폰 잠금해제를 못 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수사기관도 입법을 통해 제한적으로 비밀번호를 해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주로 테러나 조직적인 범죄의 경우에 한해서다.

문제는 헌법상 보장된 진술거부권이나 자기부죄금지의 원칙 등에 어긋나고, 사생활의 자유가 침해되는 등 기본권 제한의 성격이 크다는 점이다. 추 장관이 이른바 ‘한동훈 방지법’ 입법 추진 입장을 밝혔을 때, 야당뿐만 아니라 참여연대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진보 단체, 심지어는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까지 비판을 받으며 거센 역풍에 휩싸였던 이유다.

홍채나 지문 같은 생체정보 제출을 강제하는 영장을 법원에서 발부받을 수도 있지만, 법원도 이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어 쉽지 않다. 강력범죄의 경우 DNA를 채취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 이미 제정됐지만, 비밀번호를 말하도록 의무화하는 건 현재로선 법적 근거가 없어 불가능한 상태다. 부장검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수사 필요성을 위해 기본권을 제한할 경우엔 적용 대상을 명확하게 지정해야 한다”며 “일반 범죄에 대해서까지 이런 법안을 만들면 위헌 소지가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한 지방검찰청 고위 간부도 “9ㆍ11 테러처럼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사건의 수사를 위해, 극도로 제한적인 경우에 휴대폰을 열도록 강제할 필요성은 있다”면서도 “무엇보다 국민적 합의를 거쳐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안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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