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성추행 피해자 실명 적힌 편지 유출… 2차 가해 논란

입력
2020.12.23 20:34
민경국 전 서울시 비서관이 SNS서 편지 공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가 과거 박 전 시장에게 쓴 편지가 공개돼 2차 가해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편지에 적혀있던 피해자의 실명도 노출됐던 것으로 알려져, 성폭력 피해자의 신상 정보를 피해자 동의 없이 누설하는 것을 금지한 현행법 위반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민경국 전 서울시 인사기획비서관은 23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박 전 시장에게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 A씨가 쓴 편지 여러 장을 공개했다.

이 편지는 A씨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박 전 시장의 생일을 축하하며 쓴 것으로, 박 전시장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뜻이 담겨 있다.

민 전 비서관은 "이 게시물을 보시는 분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다. 잊으면 잃어버리게 된다"며 편지를 경찰과 인권위원회에 증거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민 전 비서관이 글을 올린 직후 김민웅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가 자신의 SNS에 "민 전 비서관의 공개 자료"라며 같은 사진을 공유했다. 이 과정에서 편지 내용은 물론 피해자의 실명까지 그대로 공개됐다가 뒤늦게 게시물이 수정돼 이름이 가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민 전 비서관은 "실명을 유출한 적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 전 비서관은 A씨와 1년 넘게 서울시장 비서실에서 함께 근무한 인물로, 언론과 SNS 등을 통해 A씨 측 주장 일부를 반박해왔다. 그는 지난 4월 A씨가 비서실의 다른 직원에게 성폭력을 당한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규정과 절차에 따랐다"는 취지로 거듭 반박했다.

그러나 이 같은 행동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와 현행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성폭력처벌법)은 '피해자의 신원과 사생활비밀누설금지위반' 조항을 두고 있어, 피해자의 동의 없이 피해자에 대한 정보를 노출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SNS에서 이 같은 사실을 지적하며 "피해자를 공개하고 위협하는 행동을 즉각 멈춰야 한다. 어디까지 피해자를 착취하냐"고 강하게 질타했다.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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